KB증권과 하나증권의 ‘자전거래’는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대규모 머니마켓랩(MMW)·특정금전신탁(MMT) 환매 중단 사태가 배경이 됐다. 두 증권사 모두 단기상품 가입자의 자금으로 고금리 장기자산에 투자하는 식으로 불건전 영업을 하다가 만기 불일치로 고객에게 돈을 돌려줄 수 없게 되자 위장거래를 통해 손실을 보전해주면서 책임을 감추려 한 것이다. 증권업계의 ‘도덕적 해이’가 확인된 이번 사례는 자칫 ‘한국판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번질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하나증권에서 벌어진 불법 위장거래는 증권업계에 만연한 MMT·MMW 관련 불건전 영업에 따른 손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했다.
증권사들은 기업, 공제회, 연기금 등 고객들에게 MMW·MMT 가입을 통해 3개월, 6개월 등 단기에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며 경쟁했다. 고객들은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증권사를 선택하는 일종의 ‘금리 쇼핑’을 해왔다. 두 상품 모두 여윳돈을 단기간에 안전하게 굴리고 싶은 고객들이 가입하는 초단기 운용 상품이다. MMT의 경우 유동성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신탁재산을 거래일과 결제일이 동일한 자산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준수사항이 있다. MMW 역시 계약 형태만 다를 뿐 마찬가지다.
금리 경쟁이 벌어지자 증권사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기 위해 원칙을 어기고 장기 캐피털채, 카드채 등 고위험 자산에 손을 댔다. 고금리의 장기채 투자를 통해 고객에게 약속한 수익률보다 많은 수익이 나왔고 여기서 발생한 차익은 대부분 증권사의 실적이 됐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MMW·MMT에서 장단기 금리차를 이용한 운용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함께 2010년대 증권사들의 실적을 책임지는 두 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금리가 급등하며 증권사들은 채권 투자에서 막대한 평가손실을 입었다. 여기에 지난해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마비됐다. 손실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시중자금이 돌지 않으면서 증권사도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만기가 다가온 고객들이 환매 요청을 했지만 장기채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1군 건설사, 대형 유통사, 연기금 등 수많은 법인고객이 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피해를 봤다.
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두 증권사는 불법 운용에 따른 책임을 감추기 위해 자전거래로 고객의 손실을 보전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같은 행태는 불건전 영업과 내부통제 실패 등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도 있다. KB증권이 고객 계좌에서 발생한 손실을 하나증권에 넘긴 뒤 자기자본으로 손실을 떠안은 것은 간접적인 자전거래에 해당할 수 있다. 증권사 고위 임원들이 이를 인지했는지 여부에 따라 내부통제 이슈로 번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한국판 SVB 사태가 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학계 관계자는 “가입자가 법인고객이었기에 망정이지 일반 금융소비자였다면 99% 출금 요청이 쇄도했을 것”이라면서 “뱅크런이 일어나 증권업계 파산 행렬이 이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증권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단기채 시장 경색 상황에서 고객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임송수 김진욱 이광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