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보면 겁나… 피난처 잃었으니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입력 2023-05-23 04:08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전담하는 해맑음센터가 지난 19일 수료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사진은 조정실(왼쪽) 해맑음센터장과 학부모가 서로 안고 있는 모습. 해맑음센터 제공

전국 유일의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 기숙 기관인 해맑음센터가 지난 19일 끝내 문을 닫으면서 센터에 머무르던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었다. 교육부는 지난 16일 협의도 없는 상태에서 시설 폐쇄를 통보했다. 해맑음센터가 유일한 ‘내 편’이자 ‘피신처’였다는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수료식을 끝으로 흩어지게 됐다.

2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 유성구 해맑음센터에 마지막으로 있던 학생 7명 중 5명은 다른 지역의 대체 지원기관으로 이동한다. 2명은 이를 거부하고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던 원래 학교로 돌아갔다. 교육부가 이들에게 대체기관으로 안내한 10곳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분리가 되지 않는 시설들이었다.

교육부는 안전진단에서 기숙사 건물이 D등급,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교사동이 E등급이 나왔다는 이유로 시설퇴거 명령을 내렸다. 이 문제는 수개월 전부터 지적됐던 터라 정원 30명 시설에 7명만 남아 있던 상황이었지만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최근 국민일보가 해맑음센터를 방문해 만난 학생들은 센터를 하나뿐인 피신처라고 불렀다. ‘왜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에 아이들은 “폭력을 당해도 학교에선 내 편이 돼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중학교 2학년 강모(14)군은 “태권도를 배운 가해학생이 어른들만 없으면 덩치가 작은 나를 때리고 욕을 했다”며 “학교폭력대책심의위가 열려 그 친구에게 사회봉사(4호) 처분이 내려졌지만, 그 이후로도 내 SNS에 그 친구나 모르는 사람들의 협박 메시지가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폭심의위 결과가 나온 날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강군처럼 학폭의 트라우마는 아이들 마음속에 씻기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었다. 센터에서 학생들과 함께 인근 바닷가로 치유 여행을 갔을 당시 담당 교사와 간식을 사러 가던 학생 3명이 갑자기 몸을 숨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길 건너편 교복 차림의 학생 무리를 보고 겁에 질렸었다는 것이다.

피해학생들은 학폭을 거치면서 담임교사 등 어른들에 대한 믿음마저 잃어버렸다. 이모(14)양은 “전학 간 학교의 같은 반 친구들이 지나갈 때마다 발을 걸고, 또 내가 ‘일진’들과 어울리면서 술·담배를 한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냈었다”고 떠올렸다. 이양은 “선생님들은 제 얘기를 듣고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더니, 대안학교에 전학가려고 하자 이를 말리는 데만 급급했다”며 “그사이 저는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토로했다.

해맑음센터에 입소한 아이들 중 일선 학교와 연계되는 시스템을 통해 온 이는 없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자료를 보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2만5903건으로 잠시 줄었던 학폭은 2021년 4만4444건, 지난해 6만2052건으로 급증했다. 학폭 사례는 늘고 있지만 피해학생 전담지원센터로 연계되는 시스템은 아직도 미비한 상황인 것이다.

문을 닫은 해맑음센터 이전 부지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교육부는 경북 구미와 경기도 양평, 충남 서산에 있는 폐교 후보지 3곳 중 대체 부지를 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해맑음센터 측은 “‘검토했지만 유배지와 다를 바 없어 어렵다’는 답을 한 지 오래”라며 “교육부의 일방적인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