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남태평양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와 새로운 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최근 10여년간 이 지역에서 여러 원조와 투자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로이터통신, CNN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파푸아뉴기니 수도 포트모르즈비에서 제임스 마라페 파푸아뉴기니 총리와 상호 방위·감시협정에 서명했다. 애초 조 바이든 대통령이 호주의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안보 협의체)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해 조약에 서명할 예정이었지만 미 연방정부 부채 협상을 위해 일정을 취소했다. BBC는 이와 관련, “파푸아뉴기니는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특별한 손님을 위해 파티를 열 준비가 돼 있었지만 귀빈은 ‘노쇼(no-show)’ 했다”고 꼬집었다.
파푸아뉴기니는 남태평양 뉴기니섬의 동쪽에 있는 독립국으로 호주 바로 북쪽에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태평양 전선 기지가 있던 전략적 요충지다. 태평양 섬나라 중 가장 큰 규모인 1000만여명의 인구가 있다.
이번 협정을 통해 미국은 파푸아뉴기니에 4500만 달러(약 593억원)를 제공한다. 이 돈은 파푸아뉴기니 방어군을 위한 보호 장비 지원 등 안보 협력 개선, 기후 변화 완화, 국제 범죄 및 HIV·에이즈 대처 지원을 위해 쓰인다. 대신 미군은 파푸아뉴기니 공항과 항구를 이용할 수 있으며 유사시 주둔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마라페 총리는 전날 기자들에게 “이번 협정은 방위 인프라와 역량을 강화하는 기존 협정의 연장선”이라면서도 “향후 10년 동안 파푸아뉴기니에 주둔하는 미군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이번 협정이)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최근 솔로몬제도와 통가에 대사관을 개설하는 등 태평양 섬나라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조셉 윤 미 국무부 태평양도서국 협약 특사는 미국이 22일 팔라우와, 23일 미크로네시아와 국가안보협정(COFA)을 갱신한다고 밝혔다. 마셜제도와의 COFA 연장도 수주 내 이뤄질 예정이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군은 미크로네시아·마셜제도·팔라우 등 태평양 3개 도서국의 영공과 영해에 독점적으로 항해할 수 있고, 그 대가로 이들 국가는 미국의 재정 지원을 받게 된다.
중국은 미국보다 빨리 움직였다. 지난해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유사시 이 지역에 병력을 파견할 수 있도록 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의 남태평양 방문에 대해 지난 19일 “이 지역에 지정학적 게임을 도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다만 태평양 섬나라들은 미·중 간 힘겨루기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는 이날 “우리는 태평양의 군사화에 관심이 없다”며 “기후 변화 등 상호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에 대해 협력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날 포트모르즈비에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힙킨스 총리 등 인도·태평양 지역 14개국 지도자가 참여한 가운데 인도·태평양도서국협력포럼(FIPIC)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모디 총리는 “인도가 태평양 도서국의 신뢰할 수 있는 개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