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거칠어지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을 제재하고 나섰다. 중간에 낀 한국 반도체는 진퇴양난이다. 당장에 타격은 없지만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반도체 업계와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의 이번 조치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미칠 단기적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한국 반도체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가중됐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은 전날 마이크론 제품에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존재한다면서 “중요한 정보 시설 운영자는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지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대한 보복 성격으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마지막 날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조치다.
당장에 한국 반도체기업이 입을 타격은 제한적이다. 근거는 업황에 있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메모리반도체 재고가 쌓여 있어 중국 업체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제품을 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마이크론의 중국 매출은 33억 달러(약 4조3560억원)가량으로 전체 매출의 10% 수준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유의미한 숫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관건은 불확실성의 증폭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은 경쟁업체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칩으로 쉽게 대체될 수 있어 중국의 명백한 첫 번째 표적이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달에는 마이크론 제재로 중국 내 반도체 물량에 공백이 생기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이를 메우지 않도록 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서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제재와 관련해 한국 기업들이 언급되는 게 부담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다 향후 업황이 개선되는데 미·중 갈등이 지속하면 한국 반도체기업들은 ‘선택의 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D램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은 과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가 마이크론 D램을 사지 못하면 대안은 사실상 삼성전자·SK하이닉스다. 또한 중국이 마이크론 판매 중단에 따른 공급 부족을 이유로 자국 기업 지원을 늘리면 한국 기업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번 제재는 중국 정부의 YMTC(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에 대한 지원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조민아 기자,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