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명도 없네” 양양공항, 또 유령공항 ‘악몽’

입력 2023-05-23 00:04
강원도 거점 저비용항공사 플라이강원이 국제선에 이어 국내선까지 운항을 중단한 지난 20일 강원도 양양군 양양국제공항 2층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플라이강원은 23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기자가 찾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양양국제공항 1층 만남의 광장에는 적막감만 맴돌았다. 내부 조명도 대부분 꺼져 국제공항이란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20분 동안 공항에서 만난 사람은 청소 직원과 관광안내소 직원 2명이 전부였다. 관광안내소 직원은 “지난주만 해도 승객들이 꽤 왔는데 오늘은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층 출국장에는 항공편 출발 및 도착 일정을 알리는 전광판도 모두 꺼져 있었다. 검색대, 대합실 모두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공항 내 커피전문점은 며칠 뒤부터는 사장 한 명만 근무한다. 본사 직영 편의점은 25일부터 문을 닫는다. 커피숍 직원 김모(47)씨는 “사장님까지 3명이 일했는데 한 명은 국제선 운항이 중단된 지난 3일에 그만뒀고, 저는 이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둔다”며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인데 당장 일을 그만둬야 해 막막하다”고 말했다.

양양국제공항이 텅 빈 이유는 이 공항을 모기지로 하는 저비용항공사(LCC) 플라이강원이 지난 3일 국제선에 이어 20일부터 국내선 운항을 전면 중단한 탓이다. 이들 노선은 6월 30일까지 운항하지 않는다. 이 공항의 정기노선은 플라이강원이 유일하다. 우여곡절 끝에 명맥을 이어가던 양양국제공항이 또다시 승객이 없는 ‘유령공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셈이다.

한산한 양양국제공항 외부 모습. 연합뉴스

공항에서 만난 양양 주민 고모(61)씨는 “운항을 모두 중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돼 와봤다”며 “정부가 수천억원을 들여 공항을 만들어놨으면 항공사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감독했어야 했다”고 했다.

2019년 11월 첫 취항한 플라이강원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취항 직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는 등 각종 악재 속에 임금 체불과 항공기 임대료 체납에 시달리고 있다. 채무액은 440억원에 달한다.

플라이강원은 23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다. 주원석 플라이강원 대표는 “신속한 투자 유치로 회생절차를 조속히 종결하고 회사를 정상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플라이강원이 6월 30일까지로 운항 중단 시한을 정한 것은 60일 이상 운항 중단 시 항공면허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 중 기업회생이 받아들여지면 7월 운항 재개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플라이강원이 기업회생을 신청해도 법원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과거 법정관리로 불리던 기업회생은 잘못된 사업 구조나 부실 경영으로 기업에 위기가 닥쳤을 때 법원이 지정한 제3자가 기업 활동 전반을 대신해 관리하도록 하는 기업 구조조정 절차다. 법무법인 경천의 김명수 도산전문변호사는 “기업이 회생을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인가가 나는 것은 아니다”며 “법원이 기업의 청산가치와 계속가치를 종합 판단해 회생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양국제공항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강원 영동지역 공약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1997년 2월 착공해 2002년 4월 문을 열었다. 국비 3567억원이 투입됐다. 당시 정부는 양양공항을 동해안 관광자원을 활용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물론 금강산관광과 남북교류 등 통일대비 거점공항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개항 첫해 21만7000여명에 달했던 이용객은 2003년 19만4500여명, 2004년 11만7000여명으로 급감했다. 2009년엔 이용객이 3066명으로 곤두박질쳤다. 하루 평균 8명 정도만 이용한 셈이다. 특히 2008년 11월부터는 9개월간 비행기가 전혀 뜨지 않아 외국 언론이 ‘유령공항’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플라이강원은 강원 거점 항공사에 대한 주민들 염원, 강원도의 지원 등으로 설립돼 2019년 취항했다. 강원도 역시 운항장려금 145억원을 지원했다. 양양공항은 지난해 이용객이 38만명을 넘어서면서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플라이강원은 적자 누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강원도 관계자는 “장기간 운항이 중단되는 만큼 이 기간 다른 항공사의 국내선이라도 투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양=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