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킹메이커’(2022) 등을 통해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보여 준 변성현 감독이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을 선보였다. 주인공 길복순(전도연)이 살인청부업자이자 중학생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이야기다. 길복순의 두 얼굴을 보여주며 다양한 도구를 사용한 액션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변 감독은 “처음으로 배우 자체에 접근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전도연 선배를 만나 팬이라고 했더니 ‘다들 만나면 팬이라고 그래요, 시나리오를 안 줘서 그렇지’ 라고 하시며 농담 삼아 ‘감독님이 쓰는 거 나랑 해요’ 라고 했다”며 “사실 걱정스러웠다. 전도연 선배와 하면 정말 잘 해내야할 것 같았다”고 처음을 돌이켰다.
변 감독은 왜 전도연을 두고 이런 액션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는 “전도연은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인데 작품 속에선 주변 사람들에게 희생당하거나 처연함을 갖고 있는 역할로 많이 쓰였다. 본인도 다른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는 듯 했다”며 “내가 실제로 아는 전도연은 굉장히 다가가기 힘들고, 영화계에선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활감 있는 인물보다는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사람처럼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길복순’에서 전도연과 호흡을 맞췄지만 관객들이 변 감독과 함께 떠올리는 배우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설경구다. 전작들을 함께 해 온 설경구와 그는 이번에도 작업했다. 그럼에도 설경구가 ‘변성현의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선 부담스러워했다.
변 감독은 “페르소나는 ‘감독 자신을 투영하는 가면’이란 뜻인데 한 번도 그런 적은 없다. 내 영화에서 설경구 선배는 멋있는 역할만 했지만 나 스스로가 멋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지도, 투영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어 “얼마 전에 ‘설경구·변성현 조합이 지친다’는 내용의 기사를 봤다. 나도 속으로 ‘이젠 할 만큼 한 것 같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서 그 기사를 보고 나니 어울리는 역할이 있다면 다음에도 경구 선배님과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자신의 영화에 전도연과 설경구를 함께 캐스팅한 것은 잊지 못할 기억이다. 변 감독은 “연기를 정말 잘 한다고 느꼈고, 두 사람을 한 화면에 오래 담고 싶어서 액션 신을 대화하는 신으로 바꾸기도 했다”며 “두 배우는 여러 작품을 함께 했지만 내게는 두 배우와 같이 하는 마지막 작품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액션 연출은 배우들뿐만 아니라 변 감독에게도 도전이었고, 부담감은 적지 않았다. 그는 “내 현장은 늘 분위기가 좋은 걸로 소문이 나 있는데 이번에는 내가 계속 예민하고 날이 서 있었다. 배우들이 힘들어해도 스케줄에 맞춰 찍으려면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며 “배우들의 몸을 상하게 한다고 생각하니 못할 짓이었다. 사람한테는 육체적인 한계가 있는데 20대도 아닌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괜히 이런 걸 하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관객들이 기대할수록 다음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커진다. 변 감독은 “‘변성현의 영화들은 정형화돼 있다, 패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내가 거장이 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냥 내 자리에서 잘 하고 싶은, 꽤 괜찮은 감독이 꿈인 사람일 뿐이라 그러면 안될 것 같다”며 “고민이 늘 있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또 무언가 생각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