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부(68·제주영락교회) 장로는 1977년 남제주군청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후 2009년 서귀포시장으로 2급 공무원이 됐다.
사회에서 성실히 일하며 승진을 거듭하는 기간 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도 부지런히 해냈다. 5세 때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2017년에는 장로가 됐고, 20년 동안 찬양대에서 봉사하며 찬양대 대장도 3년째 맡고 있다.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삶의 이력서가 빼곡하게 채워졌다”는 박 장로를 지난 15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사회에서 성실히 일하며 승진을 거듭하는 기간 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도 부지런히 해냈다. 5세 때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2017년에는 장로가 됐고, 20년 동안 찬양대에서 봉사하며 찬양대 대장도 3년째 맡고 있다.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삶의 이력서가 빼곡하게 채워졌다”는 박 장로를 지난 15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이 고향인 박 장로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형편이 어려워졌다. 중학교 시절 1~2등을 다투며 공부했음에도 곧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년 동안 면사무소에서 일하며 학비를 모은 끝에 집에서 왕복 3시간 거리의 한림공업고등학교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그마저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학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어느 집의 가정교사로 입주해 두 명의 남학생을 가르치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 좌절과 아픔이 찾아왔지만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의지할 곳은 오직 하나님뿐이었고 기도할 때마다 새로운 희망이 솟아났다. 당시 새벽기도를 출석하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아이고, 어린 학생이 착하기도 해라. 잠도 안자고 이렇게 매일 기도를 하니 복을 많이 받겠구나”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습관으로 지금까지 박 장로는 매일 새벽기도를 지키고 있다.
고등학교 성적은 늘 1~2등이었다. 2학년을 마치는 1974년 교복을 입은 채 9급 토목직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면사무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공업고등학교 3학년은 취직 후에도 실습으로 처리하여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후 군입대 문제로 사표를 내고, 군복무 중 공부하여 9급 행정직렬에 합격했다.
1977년 그렇게 다시 공무원이 되었고, 남제주군청에서 제주도청으로 이동하여 근무를 이어갔다. 근무하는 틈틈이 야간대학 행정학과 공부도 시작했으며, 대학 졸업을 앞둔 1985년에는 국가직으로 전입 시험을 치러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서 근무하는 기회도 잡았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시험을 치른 결과 면사무소에서 처음 시작한 공직생활은 중앙정부까지 이어졌다.
1985년부터 1994년까지 10년 서울 근무를 마치고 박 장로는 제주로 금의환향했다. 통상협력과장 투자유치과장 국제자유도시관광국장 등을 차례로 거친 후 2008년 자치행정국장 재임 중 개방형 직위로 공모한 서귀포시장에 응모했다. 박 장로는 청문회 등 엄격한 절차를 거쳐 서귀포시장에 임명됐다.
박 장로는 “9급에서 시작한 공직생활이 2급에 오르기까지 기도와 도전, 시험의 연속이었다”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박 장로는 서귀포시장 자리에 오른 후 ‘감성행정’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18만 서귀포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현장을 찾았다. 아침 7시에 각 읍면의 재래시장이나 수협공판장 등을 방문해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현장대책회의를 열었다. 또 가파도 주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섬을 떠나겠다고 하자 주민들과 대화하며 ‘청보리 축제’ 아이디어를 냈다. 그 결과 연 5000명 정도의 관광객이 찾던 가파도에 연 15만명이 방문하는 성과를 얻었다.
‘행복과 희망의 1번지 서귀포시’를 위해 2년 동안 발로 뛴 결과 국내 유수의 IT기업을 제주에 유치하고, 영어교육도시를 기공하는 등 제주발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 제주올레길을 완성하고,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등 제주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2015년 12월 박 장로는 4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년 퇴임했다. 돌아보면 고향인 제주에서 제주시민들을 섬긴 은혜롭고 특별한 시간이었다. 공직생활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주일을 지키며 봉사 자리에 섰지만, 은퇴 후에는 봉사에 더 열심을 내고 있다.
제주영락교회 장로가 되면서 차량안내위원장을 맡아 30여명의 안내위원들과 함께 2년 동안 차량 안내를 했다.
지역 내에서는 “전 서귀포시장이 교회에서 직접 차량 안내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며 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차량안내위원장을 마친 후에는 식당위원장이 되어 교회의 위생 문제를 해결하며 교회 식탁을 직접 닦았다. 현재는 봉사위원장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한 구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박 장로는 “낮은 자리에서 맡은 일을 묵묵하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 신앙인으로서 할 수 있는 자랑”이라고 말했다. 박 장로는 어린 시절 제주도에서 누구보다 가난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주도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고백한다. 박 장로는 “어린 시절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말단 공무원에서 서귀포시장에 오른 것도, 공직 생활하는 긴 시간 동안 구설수 및 징계가 없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 은혜”라고 말했다.
현재 박 장로는 제주도 내 퇴직공무원 단체인 ‘제주특별자치도행정동우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앞으로 “하루하루를 주님이 인도하시고 사용하시는 대로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박성희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