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되면 마루에 올라온 아침 햇살 따라 먼지 묻은 마루를 닦았다. 엄마가 시켜서 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오늘처럼 햇살이 부르던 날에는 기분이 좋아서다. 낡아서 상처 많은 마루에 물기 묻은 걸레가 지나가면 봄날이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시골집은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푸른 바람에 댓잎 부딪치는 사라락 소리는 계절을 말하는 음악이었다. 대나무 숲에 들어가 빼꼼이 얼굴 내민 죽순을 쓰다듬었고 순식간에 내 키보다 더 커버린 죽순 때문에 울었던 기억도 있다. 어린 나를 기억하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어린 시절이 행복했던 이유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엉뚱하게 생각하며 울고 웃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시계 앞에 게으름을 피워도 든든한 지원군 부모가 있어 무서울 것도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오늘은 바람이 멀리서 햇살을 실어 왔나 보다.
토요일마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설 때가 생각난다. 빛의 변화에 따라 색과 형태가 달라 보였다. 마루에 걸터앉아 대문 밖 풍경을 내다볼 때면 시간의 변화만큼 시골의 모습이 다채롭다는 생각을 곧잘 했다. 모네의 인생 주제였던 빛은 우리 집 골목길 ‘건초더미’ 위에서도 빛났다. 똑같은 풍경을 보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 같은 것이 없음을 깨달았던 모네. 해 질 녘 풍경이 주는 바람과 냄새와 함께 자주 찾아들곤 했다.
기력이 쇠해지고 머리가 희어지기 전 부모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딸자식을 두고 내기를 했다. 삐걱대는 나무 대문이 열리면 딸이 누구를 부르며 들어올 것인가를.
부모는 대문을 사이에 놓고 아버지는 왼쪽 헛간 건초더미에, 엄마는 오른쪽 창고 문을 살짝 열어 놓고 몸을 숨겼다. 딸의 목소리가 채워 줄 빈 공간을 넓게 두고 숨바꼭질을 했다. 바람 담은 설렘은 대문을 향해 쫑긋한 귀로 변신했고 부모는 웃음을 참아가며 잔뜩 웅크렸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헛간과 창고 앞을 지나가는 딸의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작다. 확신에 찬 마음에 잔뜩 들떠 있는 엄마.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진 아버지. 숨 죽여 가며 딸의 목소리를 기다리는데 속절없이 고요하다. 방안으로 숨어 들어가 버린 딸의 발소리를 햇빛과 바람이 품고 있다. 엄마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당을 깨운다.
“아야 니는 일주일 만에 집에 옴시롬 엄마도 안 부르고 들어온다냐잉!” 방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에 아버지도 건초더미에서 내려왔다. 눈이 휘둥그레 한 딸이 방문을 열며 나왔다. “도둑고양이 새끼마냥 소리 없이 들어가뿌냐잉. 엄마 하고 부를 것이제.” 서운함이 또다시 마당을 채웠다. 아버지는 무엇이 즐거운지 껄껄껄 웃는다.
나는 지금 엄마 닮은 얼굴로 세탁기 뒤에 숨어 있다. 딸은 나의 유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세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또 숨었구먼” 하더니 크게 웃어준다. 세월이 언제 이만큼 흘렀는지. 구석구석을 뒤지며 숨바꼭질했던 집이었는데 그릇이 되어 삶을 담더니 딸을 훌쩍 키워버렸다. 엉뚱하게 세탁기 뚜껑이 몇 번씩 여닫히고 웃음보따리가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숨바꼭질 시간. 딸의 몸짓과 마음은 기쁨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가정에서 많은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가족의 몸짓과 감정, 관심을 시간 속에 가둬 버릴 때가 많다. 대화의 냄새는 사라지고 일상의 핵심만이 덩그러니다. 그럼에도 행복한 감정이 기쁨으로 솟아나면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잠깐일지라도 함께 하루를 이야기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삶, 생각해야 한다.
그날. 부모가 자식을 위해 온몸으로 대화하던 날. 내 손에 있던 작은 카네이션도 두근거리며 숨바꼭질을 했다. 어린 나의 발자국은 조용히, 가볍게, 기쁨을 감추며 달렸었다.
숨바꼭질을 마치고 딸이랑 웃고 있다. 어느새 나는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 위에 클로드 모네의 빛을 덧칠한다. 반갑게도 그 빛에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장진희 사모(그이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