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영화감독이 초기 작품 ‘황산벌’에서 선보인 유명한 대사는 지금도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 경제학자로서 참 두고두고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다. 경쟁에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필자는 한국 축구를 두 시기로 나눈다. 히딩크 이전과 히딩크 이후다. 히딩크 이전 한국 축구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맨날 똑같은 선수만 대표로 뽑혔다. 그런데 히딩크가 대표팀 감독으로 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히딩크는 학연과 지연, 축구계 유력 인사 추천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뽑았던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을 고쳤다. 철저한 경쟁시스템을 도입했다. 말도 안 통하고 경쟁에 선입견도 없었던 히딩크는 그전에는 듣도 보도 못했던 박지성, 송종국, 최진철, 김남일, 이을용, 이운재 같은 신인들을 대거 발굴했다. 철저하게 경쟁만을 통해 능력 있는 선수를 발견했다. 히딩크 이후 한국 축구는 경쟁시스템을 정착시켰고 그 이후 5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다.
학생들의 진정한 실력은 시험에서 드러난다. 수업시간의 태도, 질문, 출석 등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시험 답안지는 보여준다. 학생 실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학생들의 능력과 재질을 답안지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경쟁은 진정으로 능력 있는 경쟁자가 드러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나 게임에서 승자를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품 간 경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유망주라고 해도 경쟁의 결과 점차 한계를 보이는 선수가 있는 반면 박지성 선수처럼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차츰 놀라운 경쟁력을 보이면서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에 스카우트되는 경우도 보았다.
경쟁력 있는 기업과 제품과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사전적 평가가 아니다. 사전적 평가는 경쟁 과정을 거쳐야만 그 진위가 판결난다. 이보다는 기업, 제품, 인재가 서로 부딪히고 맞서면서 스스로를 증명해 낼 수 있는 건강한 테스트 그라운드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경쟁은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다. 처음에 반짝이다 곧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지는 경쟁자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 왔는가.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잘 담아내고 시장에서의 시행착오를 반영해서 초기 실패를 바로잡고 품질을 개선해 오랫동안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경우를 또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이미 유명한 발명가로 명성이 높았던 에디슨이 제안한 직류방식보다 당시로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테슬라가 제안한 교류방식이 결국은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도 여러 경쟁 과정을 거쳐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는 ‘모델 T’를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대량 생산하면서 자동차 생산단가를 크게 낮춰 경쟁 모델을 압도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전반 미국은 완공된 대륙 간 철도망 등의 인프라를 놀이터 삼아 스스로를 증명해낸 역동적인 기업가들의 테스트 그라운드가 됐다. 그 결과 카네기, 밴더빌트, 록펠러, 에디슨, 벨, 모건, 포드, 보잉 등 기라성 같은 기업가들이 활약하고 승자로 떠오를 수 있게 됐다.
하이에크는 경쟁이 누구에게도 알려진 바 없고 활용된 바 없는 지식의 발견 절차라고 말했다. 정부가 할 일은 사전적 평가와 지원, 규제, 간섭 등을 통해 경쟁 과정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랜 경쟁 과정을 통해 시장은 훌륭한 기업과 제품과 인재를 스스로 배출하게 마련이다. 정부는 경쟁자가 아닌 경쟁을 보호해야 한다. 시장의 힘을 믿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 경쟁은 발견 절차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