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분단 70년… 한반도 정중앙 철원서 평화의 미래 그리다

입력 2023-05-23 03:04 수정 2023-06-20 11:03
정지석(오른쪽) 국경선평화학교 대표와 이충재 사무총장이 지난 16일 강원도 철원 동주산성 정상에서 평화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들 뒤로 멀리 북한의 철원 지역이 보인다.

지난 16일 오전 일찌감치 지하철 1호선 동두천역을 향해 출발했다. 그곳에서 떠나는 백마고지행 순환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10시 48분발 직행 버스에 몸을 싣고 다시 50여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강원도 철원, 우리나라의 북쪽 끝 도시였다.

기자와 만난 정지석(63) 국경선평화학교 대표는 “대한민국 지도에서는 철원이 땅끝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한반도의 정중앙에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철원이 우리나라의 끝이라고 생각해서 오는 길이 더 멀게 느껴졌을 겁니다. 하지만 한반도 지도를 펼쳐보면 정중앙에 철원이 있어요. 통일이 되면 육로로 평양을 갈 때 지나야 하는 도시인 셈이죠. 남한과 북한의 접경지에 국경선평화학교를 세우고 10년째 평화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 이유입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인 정 대표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에서는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연구로 석사 학위를, 영국 선덜랜드대에서 ‘함석헌과 퀘이커 평화 사상 비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평화 전문가다.

연고가 없는 철원에 터를 잡은 건 2013년 3월 1일의 일이었다. 철원 민간인통제선 안에 국경선평화학교를 세운 뒤 분단된 땅에 평화라는 희망을 심는 ‘평화 전도사’로 살고 있다. 그가 세운 국경선평화학교는 평화의 용광로 역할을 하고 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가 학교의 지향점이다.

그동안 학교는 3년 교육과정을 통해 평화운동가 30여명을 배출했다.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이르는 3만여명의 시민은 이 학교에서 평화교육도 받았다. 학교가 운영하는 DMZ 평화순례에 참여한 이들은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을 잇는 500㎞ 분단의 선을 걸으며 통일을 꿈꿨다.

열 살이 된 학교는 다음 달 6일 새 교사를 완공하고 준공식을 연다.

지난 5일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국경선평화학교 완공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독지가가 기증한 육가공 공장을 학교로 개보수했다. 1983㎡(600평) 규모의 부지에는 모두 3개의 건물이 세워졌다. 기도 제단인 ‘평화기도의집’과 청소년 숙소와 교실이 있는 ‘희망의집’, 평화순례자들의 공간인 ‘지혜와순례자의집’, 식당과 회의실을 겸비한 ‘생명의집’이 자리잡고 있다.

이 일을 위해 3000여명이 정성을 모았다. 우리나라는 물론 독일과 미국의 한인교회들도 헌금을 보내왔다.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 시민들도 기금을 보냈고 베트남에 사는 한인들도 정성을 보태 국경선평화학교의 새집이 문을 열게 됐다.

준공식은 ‘1만 시민 DMZ 평화 노래 부르기’의 서막을 여는 첫날이기도 하다. 철원 노동당사와 소이산, 국경선평화학교를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잇는 행사다. 이 날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알려나간다는 게 정 목사가 그리는 큰 그림이다.

“노래는 평화를 실어 나르는 도구입니다. 평화의 노래에는 진보도, 보수도, 그 어떤 이념도 담겨 있질 않아요. 갈라진 땅에, 분쟁의 국가에 평화를 심는 도구로 쓰임 받자는 게 우리 학교 구성원들의 바람입니다.”

이렇게 말한 정 목사는 “기도처에 가보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 뒷산에 있는 ‘동주산성’을 향하는 길은 고요했다. 산성의 정상에 서면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다.

정 목사를 비롯한 학교 식구들은 매일 이 산을 오르며 묵상하고 정상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이날 기도에는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을 지낸 이충재 목사가 동행했다. 이 목사는 국경선평화학교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친 국경선평화학교 전경.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이 목사는 “기도가 국경선평화학교의 10년을 이끈 힘의 원천이었다”면서 “산길을 오르며 땀을 흘리고 북한 땅을 바라보며 평화의 기도를 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의 평화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미움을 걷어내는 일이라고도 했다.

정 목사는 “남북 분단도 아프지만 이로 인해 우리 사회 곳곳에 폭력과 분노, 미움이 뿌리내렸다”면서 “국경선평화학교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관심은 남북 화해를 통한 우리 사회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일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필연이다. 반드시 오지만 준비 없이 맞는다면 재앙이 된다”고 우려했다. 국경선평화학교가 다양한 평화 캠페인을 통해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고조되는 북한의 핵 위협에 관해 물었다.

정 목사는 “핵을 핵으로 막는다는 건 병법에서 다룰 일이지 기독교인의 관심사가 돼선 곤란하다”면서 “북한의 핵무기를 녹일 수 있는 건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을 아는 기독교인들이 나서 복음으로 핵무기를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 일에 우리 학교가 의미 있는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고 밝혔다.

국경선평화학교의 관심은 결국 한반도 평화다. 분단 70주년이 되는 올해를 평화를 향한 원년으로 삼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목사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자고 권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갈라진 땅에 평화가 찾아오질 않습니다. 시민들이,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이 평화를 함께 꿈꿔야 하는 이유입니다.”

철원=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