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2년 연속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을 밑돈 한국 경제성장률이 올해도 세계 경제성장률에 1% 포인트 뒤처진 격차를 보일 전망이다. 경제학자들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며 전형적인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이 극심한 수출 부진까지 겪으며 이 같은 추세가 두드러졌다고 진단한다. 초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선진국형 저성장 구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 고도성장은 옛말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1.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2.8%보다 1.3% 포인트 낮게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IMF만의 비관적인 예측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경제가 2.6% 성장하는 가운데 한국은 1.6%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외에도 대부분의 국제기구·금융기관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5%, 전 세계 경제성장률을 2.6% 안팎으로 예측하고 있다.
예측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은 2021년부터 3년 연속으로 세계보다 0.8% 포인트 이상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이전에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은 1998년을 제외하고는 세계보다 경제성장률이 0.5% 포인트 이상 뒤처진 적이 없었다.
연 10%에 육박하는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1990년대 초반에는 상황이 지금과는 정반대였다. 한국은 1994년(9.3%)과 95년(9.5%) 연달아 9%대 성장세를 보였다. 세계 경제성장률과 2년 내리 6% 포인트 이상 차이를 냈다. 이 같은 추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0.4% 포인트 차이로 세계 경제성장률을 앞지른 2011년부터였다. 이때부터 9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매년 세계 경제성장률과 0.4% 포인트 이내의 격차를 보였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며 선진국의 ‘외적 기준’을 만들어가던 한국이 점차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도 국내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코로나19가 큰 변수로 작용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발 경기 하락을 비교적 약하게 겪은 한국(-0.7%)이 세계(-3.1%)를 2.4% 포인트 차이로 웃돌았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반대로 세계(5.9%)와 한국(4.1%)의 격차가 1.8% 포인트에 달했다. 전년도 경기가 위축될수록 이듬해 경제성장률이 양호하게 나타나는 기저효과가 일부 작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기저효과가 약해진 지난해에도 세계와 한국의 격차는 0.8% 포인트에서 좁혀지지 않았다.
선진국의 함정에 빠졌나
경제학자들은 한국이 본격적인 ‘선진국형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한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41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3%였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한국 역시 이 추세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시각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선진국으로 편입될수록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중장기적으로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향후 계속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선진국의 생산성은 개발도상국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인구는 갈수록 고령화되고 노동 시간은 계속 짧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저비용 장시간 노동 구조는 이미 적용 불가능한 모델이 됐다. 선진국 모델을 따라가던 기술개발 역시 정체 위기가 더 커질 수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한국 경제는 사람에 비유하자면 40, 50대의 중장년이 돼서 청년 때보다 활력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극심한 수출 부진도 영향을 미쳤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10월 5.8% 역성장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7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특히 주력 상품인 반도체 수출이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으며 4월 기준 전년 대비 41%나 수출액이 감소한 상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에도 한국 경제성장률은 하락 추세였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경제 부진의 주된 원인은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 부진”이라고 지적했다.
관건은 저출산·고령화 극복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선진국 중에서도 손꼽히게 낮은 수준은 아니다. IMF는 유럽연합(EU)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0.8%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도 한국보다 낮은 1.3%의 경제성장이 예측되는 일본은 내년부터 다시 1.0% 이내의 초저성장 국면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선진국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한국의 고령화 기조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 0.78명을 나타냈다. 지난해 KDI는 총요소생산성이 계속 하락할 경우 한국 경제가 2050년이면 ‘성장률 0%’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 교수는 “아직까지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동시장에 남아 있지만, 이들이 이탈하고 나면 노동시장에서도 공백이 체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대체로 세계 경제와 보조를 같이했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점차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IMF는 지난 1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주요국 전망치를 전부 상향하면서 한국의 전망치만 0.3% 포인트 낮췄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다툼에 한층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