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에 맞서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는 ‘사람’에게도 향한 것이었다. 유럽을 옮겨놓은 듯한 화웨이 둥관 캠퍼스에서 근무하는 R&D 직원들 일부에게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주거 및 학군 혜택이 제공되고 있다. 화웨이가 2019년 미국 제재 이후 R&D에 투자한 금액은 연평균 1444억5000만 위안(약 27조58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8일 찾은 둥관의 ‘시 리우 베이 포 춘(Xi Liu Bei Po Cun)’ 캠퍼스는 화웨이 연구개발(R&D) 직원 2만5000명이 근무하는 곳이다. 이들 상당수가 시안전자과학기술대학교 출신으로, 대부분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했다. 제품 개발, 엔지니어 직원을 비롯해 수학·물리·화학 등 기초 이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일하고 있다. 화웨이 선전 본사에서 근무하던 R&D 직원들 중 대다수가 2019년 둥관 캠퍼스 완공 이후 이곳으로 옮겨왔다.
여의도 절반 정도 크기인(약 180만㎡) 캠퍼스의 12개 ‘구역(Zone)’은 모두 유럽풍으로 조성돼 있다. 각 구역 명칭은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베로나, 독일 하이델베르크, 룩셈부르크 등 유럽의 유명 도시 이름을 따 왔다. 안내 직원은 “일에 몰두하는 직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풀도록 했다”며 “해외여행을 가지 않고도 마치 해외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냇물이 흐르는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캠퍼스 분위기는 차분했으며, 중국 하면 떠오르는 그 무언가와 거리가 있었다. 건물을 둘러싼 호수와 정원의 조경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캠퍼스 내에는 직원들이 출퇴근 시 이용하는 트램도 운행되고 있었다.
특히 화웨이 R&D 직원들에게는 보다 실질적인 ‘복지’도 제공되고 있었다. 화웨이에서 3~5년 근무한 직원 중 일부는 캠퍼스 인근 기숙사에 대한 매매 자격이 주어진다. 기숙사 가격은 평당 8500~9000위안으로, 둥관 내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평당 약 4만 위안)와 비교하면 4분의 1 미만이다. 크기는 최대 3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다만 화웨이 직원 등급 가운데 중간 정도인 레벨 15~19 직원들만 살 수 있다. 화웨이에 입사하면 레벨 13을 부여받고, 이후 매년 실시되는 사내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는 등 성과에 따라 등급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기숙사 근방에는 중국 칭화대학교와 연계된 화웨이 직원 자녀 대상 초·중·고등학교도 있다. 학교 운영은 칭화대에서 하고 있고, 화웨이가 운영 자금을 대고 있다. 학비는 비싼 편이지만, 아시아 최상위권 대학이 운영하는 만큼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한편 둥관 캠퍼스 내 ‘글로벌 사이버 보안 투명성 센터’에서는 미국이 제기한 ‘백도어(무단으로 전산망에 침투하는 장치)’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화웨이의 노력이 엿보였다. 투명성 센터는 정부·고객·파트너 등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고 협력해 제품의 보안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개소했다. 이날 센터 안내를 맡은 화웨이 글로벌사이버보안책임(GSPO) 소속 엔지니어는 “우리는 원천적으로 제품에 백도어를 심지 못하도록 방지하고 있다. 생산 프로세스상 누군가 백도어를 심는다 해도, 발각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 내부 가이드라인을 어기고 제품에 악성 코드를 심은 직원은 없다”고 주장했다.
둥관=글·사진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