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입력 2023-05-22 04:10

지난 11일 저녁 러시아의 군사 전문 블로거들이 긴급 속보라면서 일제히 같은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쏟아냈다.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모든 전선에서 러시아군이 패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드니프로강을 건너 크림반도로 진격 중이며, 동부 전선에서 바흐무트를 포위한 채 솔레다르 탈환전에 돌입했다. 곧 국경을 넘어 벨고로드(러시아의 접경 도시) 점령에 나설 태세다.”

물론 오보였는데, 이 소식을 전하는 텔레그램 알람이 기관총 쏘듯 울렸다고 누군가 묘사했을 만큼 급속히 퍼져 나갔다. 러시아 네티즌은 패닉에 빠졌고, 특히 벨고로드 주민들이 우왕좌왕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한밤중에 “사실과 다르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서야 했다. 이튿날 드러난 오보의 발단은 바흐무트의 러시아 부대가 임무 교대를 위해 일부 퇴각한 것이었다. 전선의 작은 움직임이 이런 혼란을 낳을 만큼 러시아는 지금 예고된 ‘대반격’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공언한 지 여러 달 지났다. 러시아군은 지난겨울 이후 이렇다 할 공세를 펴지 못하고 있다. 바그너 용병의 바흐무트 장악이 유일한 성과다. 서방 군사 정보망에 포착된 러시아군 움직임은 방어 태세 구축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그들은 지난 몇 달간 참호를 파고 있었다. 1000㎞ 전선의 길목마다 지뢰를 뿌리고, 함정을 파고, ‘용의 이빨’이라 불리는 대전차 장애물을 세웠다. 1차 대전 때 전술이던 참호전으로 대반격에 맞서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대반격 시점을 아는 이는 지구상에 5명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예고됐지만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전투를 러시아 병사들이 참호 속에서, 푸틴이 크렘린궁에 틀어박혀서 초조히 기다리는 동안, 젤렌스키는 세계를 누볐다. 유럽과 중동을 거쳐 일본에 와서 G7 정상회담에 참석했고, 전투기 지원까지 얻어내게 됐다.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됐지만, 세계는 지금 젤렌스키의 진격 명령을 주시하고 있다. 15개월 만에 공수(攻守)가 뒤바뀐 모습이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