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박사의 성경 속 이야기] 에스더(2) - 몰락하는 하만

입력 2023-05-23 03:06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걸친 채 재를 뒤집어쓰고 대궐 문 앞 성중에 나가 대성통곡 한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에스더는 수행원 하닥을 보내 자초지종을 묻게 한다. 모르드개는 유대민족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음을 토로하면서 왕이 하만에게 내린 ‘민족말살’(ethnocide)의 조서 초본을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에스더에게 직접 어전에 나가 왕에게 탄원할 것을 부탁한다.

에스더는 난색을 드러냈다. 왜냐하면 왕실관례에 따라 왕의 호출이 있기 전, 그에게 나아가면 죽음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모르드개는 다시 전갈을 보낸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대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3~14) 그러자 에스더는 양부와 수산 성 모든 유대인들에게 3일간 금식을 요청하면서 자기 자신도 그렇게 한 후에 죽음을 무릅쓰고 왕을 알현하겠다고 회답했다.

이야기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에스더는 며칠 금식 끝에 왕후의 복장을 갖추고 왕궁 뜰 어전 맞은 편에 섰다.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에 마음이 흔연해진 아하수에로는 금규를 내밀어 그녀를 보좌 가까이 오게 했다. 그러곤 팔로 꼭 껴안으면서 그대가 원한다면 왕국의 절반이라도 내주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당장 속엣말을 털어놓지 않는다. 대신 왕을 위한 특별한 잔치를 준비하겠으니 하만과 함께 와 달라고 청한다. 반전의 때를 살핀 듯하다. 하만은 하늘을 찌를 듯 기고만장해졌다. 게다가 왕비는 둘째 날 잔치에도 와 달라고 하지 않는가. 흡족해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베옷을 입고 궁궐 문 앞에 있는 모르드개를 보았다. 기분이 매우 상했다. 그는 아내와 친구들을 불러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받은 자는 나 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에 5:12)고 자랑했다. 그런데 딱 하나, 목엣가시처럼 걸리는 모르드개를 어떻게 처치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하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높이 50규빗(약 22m) 되는 나무를 세우고 그를 매달게 해 달라고 왕에게 구하라 충고했다.

그날 밤, 왕은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래서 신하에게 선왕들의 역대기와 궁중실록을 가져오라 지시했다. 서기관은 우연히 왕에게 모반을 꾀했던 빅단과 데레스 사건의 기록을 읽었다. 일기 속엔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역모자를 고발해 공로을 세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왕은 잠시 숨을 깊게 내쉰 후 그 일에 대해 모르드개에게 무슨 존귀와 관작을 내렸느냐고 물었다. 측근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때마침 하만이 모르드개의 처형을 간청하고자 평소보다 일찍 입궐했다.

왕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케 하길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묻는다. 하만은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고 확신하면서 짐짓 겸허한 척 말한다.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길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길 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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