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솔선… ‘장묘 문화’ 바꾼 최종현-최태원 부자

입력 2023-05-22 04:04
은하수공원 내 도시형수목장 공간인 미리별동산. SK그룹 제공

세종시에는 은하수공원이 있다. 아름답고 정갈한 경관의 공원 같지만, 장례시설이다. 은하수공원은 2010년 SK그룹이 500억원을 기부해 지어졌다. 은하수공원 관계자는 21일 “SK 덕분에 충청을 대표하는 장례시설로 자리 잡았다. 세종·충청권 화장률이 약 25% 증가했다”고 밝혔다.

SK가 장묘 문화에 관심을 가진 건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로 거슬러 간다. 선대회장은 1980년 유공 인수 후 헬기로 울산 정유공장을 오가면서 우리 국토가 분묘로 덮인 현실에 탄식했다. 매년 여의도 면적만큼 묘지가 생길 때다. ‘화장(火葬)’을 대안으로 제시한 선대회장은 시신을 태우는 행위를 불효로 여기던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98년 8월 26일, 평소 유지대로 그의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다. 당시 빈소를 찾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SK가 화장터를 만들면 1호 이용자가 되겠다”고 했고, 이건희 삼성 회장도 “SK의 화장 문화 운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해 30% 미만이었던 전국의 화장률은 지난해 90%를 넘어섰다. 20여년 만에 우리나라 장묘 문화의 틀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은하수공원은 선대회장의 신념을 이어받은 최태원 회장이 매듭을 지은 작품이다. 최 회장은 “훌륭한 화장시설을 만들어 기증하라”는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최신식 장례문화센터 건립을 위해 부지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혐오시설이라는 지역 이기주의에 가로막혔다. 고심 끝에 세종시를 후보지로 정하고 2007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협의해 마침내 첫 삽을 떴다. 2010년 1월 12일 충남 연기군 남면 고정리 426번지에 무색·무연·무취의 화장시설이 들어섰다. 최 회장은 준공식에서 “정성스럽게 조상을 모시는 소중한 전통을 이어가면서 후손들의 미래가 담긴 자연환경까지 지키고 가꾸는 아름다운 장례 문화를 일궈나가는 것은 우리 세대의 숙제”라고 소감을 전했다.

은하수공원에선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약 9000명이 영면에 들었다. 은하수공원 내 안장시설에는 지난해 누적 2만6212건(봉안당 12391건·자연장지 13821건)이 봉안돼 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