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부터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에서부터 고민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백화점 행사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은 어디로 갈까. ‘대체로 폐기된다.’ 쓸모를 다 했으니 폐기가 수순인 셈이다. 백화점 외벽에 걸리는 대형 현수막 하나의 무게가 약 27㎏ 정도 된다. 비바람을 견뎌야 하는 두툼한 원단에 색색을 입힌 현수막은 그렇게 세상을 등지게 된다. 그런 현수막이 전국에, 점포마다 내걸린다.
대형 현수막 20개를 모으면 540㎏ 정도가 된다. 이걸 폐기하지 않는다면 2981㎏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현수막의 폐기 같은 것, 모른 척하고 살 수도 있겠지만 ‘기후 위기의 시대’에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크고 작은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롯데백화점과 업사이클링 전문기업 ‘누깍’은 손을 잡고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 누깍은 스페인에서 출발한 업사이클링 기업으로 현수막을 지갑, 가방 등으로 새롭게 만들어 판매한다. 롯데백화점은 현수막의 업사이클링을 누깍에 맡겼다.
롯데백화점이 현수막 업사이클링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현수막 업사이클링은 약 1년의 시간을 거치며 보냉백 업사이클링으로 확장됐다. 지난 1년 동안 현수막과 명절 선물 포장용 보냉백이 카드지갑, 작은 가방, 피크닉 매트, 보냉가방 등으로 바뀌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지난 16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사에서 롯데백화점 ESG팀과 누깍의 담당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년 6월 ‘리얼스(RE:EARTH)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현수막을 회수해서 뭔가를 만들어보자고 이야기가 나왔어요. 누깍과 협업해 사은품으로 드릴 굿즈를 만들기로 했고요. 그럴듯한 업사이클링 말고,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로 의기투합이 됐어요.”(롯데백화점 ESG팀 조아람 책임)
롯데백화점은 누깍과 협업으로 백화점에 걸리는 대형 현수막 업사이클링을 시작했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지는 자원에 디자인을 더하거나 활용방법을 바꿔서 새로운 상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대형 현수막을 카드지갑과 작은 가방 등으로 만들어 사은품으로 내놓았다.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매진되면서 호응을 얻었다.
“수도권 점포에서 걷어낸 현수막 20개를 기준으로 하면 무게가 총 540㎏ 정도예요. 그걸 폐기하지 않으면 2981㎏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요. 1년에 소나무 386그루를 심은 효과를 내는 거죠. 상반기, 하반기 연 2회면 약 800그루의 나무를 심는 셈입니다.”(황혜진 리더)
현수막 업사이클링은 이런 과정을 거친다. 운영이 끝난 한밤중에 불이 꺼진 백화점 외벽의 대형 현수막(가로 10m·세로 11m)을 걷어낸다. 임무를 다한 현수막은 트럭에 실려 누깍 사무실로 옮겨 간다.
그렇게 현수막이 모이면 일단 ‘손세척’한다. 물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람이 일일이 닦아내서 오염물질을 줄인다. 고온고압의 세척을 거치면 재단을 한다. 가위를 든 직원들이 업사이클링하기 좋은 모양과 크기로 원단을 잘라낸다.
디자인에 맞춰서 찍어내는 작업 정도만 프레스 기계를 사용한다. 보통 현수막 하나에서 카드지갑 500여개, 가방 100개 미만이 나온다고 한다.
대형 현수막을 카드지갑으로, 보냉백을 작은 가방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잊지 못할 순간을 물었다. 누깍 고명찬 책임은 ‘누깍이 처음으로 보냉백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던 때’를 꼽았다. 지난해 10월의 일이었다.
고 책임은 누깍 본사가 있는 스페인에서 출장 중이었다. 하필 그때 롯데백화점에서 수거된 보냉백 약 3800개가 누깍 매장에 답지했다.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롯데백화점의 보냉백이 매장에 엄청나게 쌓이고 있어요. 아수라장이에요.” 매장 한쪽을 가득 메운 보냉백들을 보면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경험에 없던 작업을 새롭게 해야 했던 터라 마음이 급해졌다. 고 책임은 “서둘러 귀국해서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현수막으로 만든 업사이클링 굿즈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롯데백화점은 호응에 힘을 얻어서 보냉백 업사이클링으로 소재를 확장시켰다. 누깍에서 상품 기획을 하는 안수빈 MD도 ‘보냉백이 매장에 쌓인 날’을 인상 깊게 떠올렸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잠깐 가위 들고 내려오세요’ 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저희는 직원들 업무가 뭐든 간에 가위로 재단하는 일에 투입되는 일이 흔하긴 해요. 그런데 보냉백은 처음이라…. (웃음) 매장 밖에서는 ‘들어가도 되는 거야?’하고 걱정할 만큼 보냉백들이 마구 쌓이고 있었고, 종일 가위질을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예민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업사이클링 과정에서도 탄소발자국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친환경 기업이 상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탄소배출은 유독 얄궂게 지적되곤 한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수작업을 많이 해요. 저희 직원이 15명 정도인데 모두 가위질을 진짜 잘해요. 기계로 재단하기도 힘든 게, 업사이클링 제품을 제작 할 수 있도록 요령껏 잘라야 하거든요. 바느질은 일일이 재봉틀을 쓰고요. 제품의 80~90%는 업사이클링 소재로 만들어요.”(고명찬)
기계 대신 사람이 일을 하면 탄소 배출은 줄여도 비용 지출은 늘게 된다. 수작업에 드는 인건비가 제품 단가로 반영되면서다. 그래서 또 다른 민감한 질문, 돈 얘기를 물었다. 비용이 많이 드는데 지속성이 있는 사업이 될 수 있는지 질문했다.
“비용은 백화점에서도 중요한 이슈이긴 해요. 업사이클링에 비용이 많이 드는 게 현실이고요. 그래도 ‘성공적인 ESG 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비용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기업으로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요. 롯데백화점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꺼이 투자를 이어가려는 의지가 있습니다.”(윤재원 ESG 팀장)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