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층, 제3당 깃발 아래 모일까

입력 2023-05-20 04:02

22대 총선을 11개월여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제3지대론’이 꿈틀대고 있다. 그동안 총선이나 대선 시즌이 되면 제3지대 신당 창당 가능성이 매번 제기돼 왔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신당 가운데 선거에서 괄목할 성적을 거둬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또 몇 안 되는 성공 케이스가 보수·진보 양 진영의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처럼 오래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 역사상 ‘성공한 제3당’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일반적으로 거대 양당에 피로를 느끼는 무당파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제3지대를 찾는다. 비록 현실 정치에서 성공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기존 정치 구도나 거대 양당의 행태에 불만과 회의를 품은 국민이 많기 때문에 제3지대 신당은 매번 관심을 끈다.

정치 구도 바꾸려면 최소 30석 확보해야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토론회를 열기 전 환담하고 있다. 금 전 의원은 이 토론회에서 제3지대 신당 창당 의사를 처음 밝혔다. 뉴시스

내년 총선을 겨냥해 가장 먼저 제3지대 깃발을 꽂은 건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금 전 의원은 오는 9월 추석 전까지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계획이다. ‘킹메이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금 전 의원을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금 전 의원은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유권자들이나 정치인들이나 ‘지금의 정치 체제대로 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들은 다 하고 있다”며 “유권자들이 ‘새로운 세력에 기회를 주면 지금 구조를 바꿔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충분히 의석수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 전 의원은 기존 정치 구도를 바꿀 수 있는 제3당의 의석수를 최소 30석(전체 의석의 10%)으로 보고 있다. 금 전 의원 신당의 목표도 ‘수도권 중심 30석’이다.


한국 정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표적인 제3당은 1995년에 등장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다. 자민련은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50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충청권 24석과 나머지 지역 17석에다 전국구 9석을 차지했다. 김종필이라는 거물 정치인을 중심으로 충청 지역 기반이 워낙 탄탄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2016년 창당된 국민의당도 그해 20대 총선에서 38명의 당선자를 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안철수라는 인지도 높은 인사를 앞세우면서 호남 지역 의석 대부분을 석권했다.

대선주자급 인사와 탄탄한 지역 기반 필요


전문가들은 제3지대 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선 자민련과 국민의당의 사례처럼 대선주자급 인사와 탄탄한 지역 기반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채워지지 않으면 원하는 의석수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물과 지역이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는 점에서 금 전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금 전 의원은 “자민련과 국민의당도 성공하지 못한 제3당”이라며 “인물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경우에 오히려 다 실패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자민련과 국민의당은 선거에서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으나, 결국엔 거대 양당에 흡수되면서 사라졌다. 자민련은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공동 여당이 되기도 했고, 10년 넘게 존속했다. 그러나 구심점이었던 김종필의 정계 은퇴 이후 해산해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 흡수됐다. 국민의당은 2017년 안철수의 대선 패배 이후 내홍이 심해지다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으로 바뀌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도 1992년 14대 총선에서 31석을 얻는 큰 성공을 거뒀으나, 정 전 회장이 그해 대선에서 진 뒤 당이 급격히 흔들리며 창당 2년 반 만에 소멸했다. 2007년 대선 출마로 깜짝 주목을 받았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의 창조한국당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제3당 출현의 토양은 마련되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해지면서 많은 국민이 기존 양당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제3지대 신당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도층과 무당층의 확대로 제3당 출현의 ‘정치적 토양’은 어느 정도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3지대 정당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6.8%에 달했다. 또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달 24~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제3지대 신당 창당 시 지지하겠다’는 의견이 30.0%로 나타났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는 “제3당을 향한 유권자의 요구는 항상 있었지만 최근에 그 에너지가 더 세다”면서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구심점으로서 리더가 있어야 되는데, 지금으로선 두고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현행 소선거구제가 제3당이나 신생 정당에 불리한 체제여서 이런 여론이 온전히 의석수로 반영되기는 쉽지 않다. 현재 국회에서 선거제 개편을 논의 중이기는 하나, 기존 제도를 뒤엎는 수준의 개편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또 아무리 정치적 여건이 조성된다고 해도 제3지대 신당이 그저 새로운 당이라는 이유로 유권자들로부터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도층과 무당층이 많다고 그들 중 상당수가 제3지대 신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유권자들은 기대를 걸어 볼 만한 대안 세력이라는 판단이 서야 그 신당에 표를 줄 것이다.

금 전 의원은 국민이 가장 불안해하는 문제를 ‘양극화’로 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우리가 지금 직면해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또 그에 대해 어떤 솔루션을 낼 수 있을지 의논하고 있다”면서 “제3당은 문제 해결 중심의 정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