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실종 해결하려면 여의도 1000배 크기 꽃밭 필요”

입력 2023-05-19 04:04
충남 공주시 양봉 농가에 있는 꿀벌 모습. 국민일보DB

국내 꿀벌의 ‘집단 폐사’를 막기 위해서는 여의도 면적 1000배 규모의 꽃·나무밭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후위기 등으로 생존 위기에 처한 꿀벌은 올해 국내에서만 141억~188억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은 ‘세계 벌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국내 꿀벌의 폐사 원인과 해결책을 분석한 ‘벌의 위기와 보호 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꿀벌 집단 실종 현상은 2000년 중반 미국과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보고되고 있다. 세계 주요 100대 농작물 중 70% 이상이 꿀벌의 도움을 받아 생산된다는 점에서 꿀벌 개체 수 감소는 인류의 식량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국내에서는 2021년 겨울 78억 마리의 꿀벌이 한꺼번에 사라진 데 이어 지난해 9~11월 사이에만 100억 마리의 꿀벌이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초에는 한국양봉협회 소속 농가의 벌통 153만7270개 중 61.4%인 94만4000개가 폐사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통상 벌통 1개에 꿀벌 1만5000~2만 마리가 사는 것을 고려하면 141억6000~188억8000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것이다.

보고서는 꿀벌 실종 원인에 대해 기후위기, ‘밀원’(벌이 꿀을 얻어오는 식물) 다양성 감소, 질병, 해충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의 봄꽃 개화일은 1950~2010년대 대비 약 3~9일 빨라져 꿀벌이 동면에서 깨어나기 전에 꽃이 피었다가 져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겨울이 따뜻해져 여왕벌이 일찍 알을 낳으면서 일벌이 겨울잠에 들지 못하기도 한다.


밀원이 감소하고 있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꿀벌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면 성장 둔화 등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바이러스 같은 외부 요인에 더욱 취약해진다. 보고서가 제시한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밀원은 2020년 기준 14만6000㏊로, 1970~80년대 47만8000㏊와 비교하면 약 33만㏊ 감소했다. 보고서는 꿀벌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해 최소 30만㏊의 밀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의도(2.9㎢)의 약 1000배에 이르는 규모다.

그린피스는 “산림청은 매년 약 3800ha씩 밀원 면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속도라면 과거 수준으로 돌이키는 데 약 100년이 넘게 걸린다”며 “밀원 면적 확대를 위해 국유림·공유림 내 국토 이용 계획과 조림·산림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특히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지역 특화형 밀원수를 심고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밀원은 벌뿐 아니라 천적 곤충들에게 먹이와 서식처를 제공한다”며 “단순히 벌을 위한 활동이라기보다 식량안보는 물론 지속가능한 생태계 유지의 필수적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