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과거의 관행을 통렬히 반성한다”며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꿔달겠다는 내용의 혁신안을 18일 발표했다. 정치권 등의 압력을 차단하기 위해 윤리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산하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이 모두 탈퇴하며 잃어버린 ‘재계 대표 단체’ 위상을 본격적으로 되찾겠다는 것이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장과 시민사회 역할이 확대되는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정부와의 관계에만 치중한 것을 반성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새 기관명으로 밝힌 한국경제인협회는 1961년 설립 당시 사용한 명칭이다. 회원사가 늘자 1968년 지금의 전경련으로 이름을 바꿔 55년 간 이어왔다.
전경련은 기존 회장과 사무국 위주의 내부 의사결정 체계도 바꾸겠다고 밝혔다. 윤리경영위를 설치해 회장단의 독단적 결정을 제어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직무대행은 “특히 물질적 기여를 회원사에 강요하는 행위는 위원회 심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겠다”고 했다. 전경련 회원사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사태가 재현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위원회 구성에 대해선 “누가 봐도 소수 의견을 낼 분들로 모시려 한다”고 했다.
전경련은 4대 그룹 복귀와 차기 회장 선출이라는 핵심 과제를 계속 풀어나겠다고 밝혔다. 내부 개혁을 통해 부정적 여론을 털어내고, 과거 회비 75% 이상을 담당했던 4대 그룹을 전경련에 다시 합류시켜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직무대행은 “개혁을 제대로 하면 4대 그룹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면서 “이미 실무자 중심으로 상당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가 또 다른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은 여전하다. 4대 그룹의 복귀가 현실화될 지도 미지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생활부터 특별사면까지 굴곡을 겪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현재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 LG그룹은 구본무 전 회장 시절부터 전경련과 거리를 둬 왔다. 김 직무대행은 “억지로 될 일은 아니겠지만, 4대 그룹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차기 회장 추대 문제도 개혁안 추진 및 4대 그룹 복귀와 맞물려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재계 일각에선 전경련의 ‘기관명 변경’ 방침을 정부가 승인할지 주목한다. 앞서 전경련은 2017년 3월 ‘한국기업연합회’로 바꾸겠다며 정관 변경을 추진했지만, 정관 승인 여부를 결정할 산업통상자원부가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자 유야무야된 바 있다. 그러나 전경련이 올해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방미 주요 행사를 주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직무대행은 “정부에도 혁신안을 전달했지만, 구체적인 상의를 하진 않았다”고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