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유령 간호사

입력 2023-05-19 04:10

지난 2월 삼성서울병원장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고발인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삼성서울병원이 ‘방사선종양학과 계약직 PA 간호사 채용’ 공고를 내서 인력을 채용한 게 위법하다는 이유였다. PA란 진료보조인력(Physician Assistant)을 뜻한다. 이들은 의사 업무 중 일부를 위임받아 대리시술 등 전문적 의료 행위를 수행한다. 현행법상 불법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 공공연히 이뤄져왔기에 관행으로 굳어졌다. 정부도 눈감아 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보건복지부는 “공고만으론 위법 여부를 따질 수 없다. 실제 업무 내용을 따져봐야 한다”며 무마하기 바빴다. 경찰이 수사 중이지만 음성적인 PA 논란은 십수년간 끊이지 않고 제기돼 온 ‘뜨거운 감자’다.

병원급 이상에서 PA 간호사가 필요한 까닭은 의사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흉부외과 등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필수 의료 현장이 그렇다.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도 활용된다. PA 간호사는 모두 1만명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간호부가 아닌 진료부에 소속돼 있다. 의사의 그림자 역할을 하기에 존재는 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낼 순 없다. 투약 및 검사 처방도 의사 아이디(ID)로 로그인해서 한다. ‘유령 간호사’로 불리는 이유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실시한 올해 실태조사를 봐도 대리시술·드레싱(44.9%), 대리처방(43.5%) 등 간호사의 의사 업무 대행이 만연해 있다.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에 반발한 대한간호협회가 그제부터 의사의 불법 업무지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에 들어갔다. 간호사의 업무가 아닌 대리처방, 대리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튜브 교환, 기관 삽입, 봉합 등을 거부한다는 게 골자다. 법을 지키겠다는 것이니 당국으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PA 간호사가 합법화돼 있는데 우리 정부는 의사단체의 반대에 밀려 꼼짝도 못하고 있다. 병원과 의사들이 불법을 강요해놓고 법제화에는 반대한다니 이런 모순도 없다. 의사 편만 드는 정부가 언제 각성할지….

박정태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