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는 법을 몰라요… 내 역할은 잔소리꾼”

입력 2023-05-18 04:07
자립준비청년 경제교육 멘토 지영주씨가 지난 11일 삼성희망디딤돌 전북센터 상담실에서 취업을 앞둔 자립청년 A씨와 상담을 하고 있다. 서울의 한 보험회사에서 지점장으로 일하는 지씨는 2021년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자립준비청년을 만나고 있다. 전주=이한형 기자

“30세까지 2억원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지난 11일 오후 1시 삼성희망디딤돌 전북센터 상담실. 취업을 앞둔 자립준비청년 A씨(23)는 자신의 1순위 재무목표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이것저것 다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을 해왔다. 최근에는 전기 관련 자격증 시험에도 합격했다. 한 전기안전 업체 면접을 앞둔 그는 월급을 받으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궁금해했다.

A씨의 경제교육 멘토인 지영주(35)씨는 “이제 7년 남았다. 매달 238만원씩 저축해야 하는데 현재 시점에서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격려했다. 지씨는 A씨와 3주 동안 매일 1000원씩 모으는 연습을 해왔다. “저축은 습관”이라며 “친구들과 쓰는 문화생활비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지씨의 말에 A씨는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내 역할은 잔소리꾼”

서울의 한 보험회사에서 지점장으로 일하는 지씨는 2021년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전북 전주의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굿네이버스의 멘토링 지원사업으로 진행하는 경제교육 멘토가 된 지 3년째다. 보호시설에서 퇴소한 뒤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일대일로 ‘가계부 쓰는 법’ ‘신용점수 관리하는 법’ ‘나에게 맞는 적금 상품 찾는 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지씨는 자신의 역할을 ‘잔소리꾼’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옆에서 관리해 줄 수 있는 어른이 거의 없다 보니 나라도 만날 때마다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썼냐’ 같은 싫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씨의 애정어린 ‘채찍질’은 멘티들에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로 다가간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지씨와 함께 세운 목표는 다양하다. 30세에 주식왕이 되겠다는 당찬 목표를 말하는가 하면 내년에는 국내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소소한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다른 자립준비청년인 B씨는 여행 자체가 막연한 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지씨는 “어렵지 않다. 여행경비를 70만원으로 잡고 매달 6만원씩 모으자”고 했다. 지씨는 “아이들이 각자 꿈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내가 하는 건 길을 잡아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지씨는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 보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매달 지원금은 들어오는데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르니 받는 대로 다 써버리는 경우가 많다. 목돈이 생겼을 때 옆에서 조언해주는 어른이 없어 그냥 체크카드 통장에 넣고 있기도 한다”며 “언젠가 자립지원이 끝날 때를 위해 보금자리 비용과 결혼 자금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고 말했다.

돈을 지키는 법 교육
전주=이한형 기자

지씨가 이들에게 강조하는 교육 중 하나는 ‘돈을 지키는 법’이다. 지씨는 독립한 자립준비청년들이 가까운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상환에 대한 고민 없이 대출을 받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금전적 지원은 있지만, 재산 관리나 투자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은 사실상 부재한 탓이다. 그가 멘토링을 시작한 것도 사회에 막 나온 청년들이 어른들에게 넘어가 과도하게 보험을 드는 일이 많다는 말을 듣고서다.

지씨는 “생활비 명목으로 여러 곳에서 신용대출을 끌어다 쓰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상환에 대해선 도통 관심이 없었다. 만기 일시 상환인지 원리금 균등 상환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매달 3만원씩 내면서 6~7년 뒤에 갚아도 된다고 하니 돈이 있어도 내버려 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신용점수가 떨어지기 전에 지씨의 도움을 받아 최근 한 곳의 대출을 상환했다.

그는 “같이 시설에서 생활하며 의지했던 형이나 누나에게 몇백만원씩 빌려줬다가 못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며 “그들도 일부러 갚지 않는 게 아니라 경제관념이 잡혀 있지 않다 보니 갚을 능력이 안 돼 또 손을 벌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씨는 이날도 지인들에게 사기당했던 청년들의 실제 경험담을 멘티들에게 쏟아냈다. ‘믿었던 친구가 사업을 한다며 투자금을 요구하는 경우’ ‘지인들을 소개해주면 투자 수익금을 더 주겠다며 속이는 돌려막기식 사기’ 등 다양한 수법의 예시를 들었다. 한 멘티는 “최근 가수 임창정씨 기사에 나오는 주가조작 사태랑 비슷한 건가”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지씨는 이런 다양한 질문에 자세히 답해줬다.

언제든 물어볼 수 있는 어른

지씨는 경제교육이 멘토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언제든 물어볼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것이다. 멘티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50분 수업 시간이 2시간 가까이 길어지기도 한다. 그는 “청년들이 갖고 있는 금전적인 문제 중에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것도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 옆에 있다는 정서적인 안정”이라며 “친구들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가끔 ‘꼰대’ 역할도 할 수밖에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청년들이 금전적 사고로 받는 스트레스를 털어놓을 곳도 없이 혼자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독립 이후에도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지 연락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이들이 더 든든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전주=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