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풀이서 귀찢는 ‘둠칫둠칫’… 구찌 ‘민폐 패션쇼’ 눈살

입력 2023-05-18 00:02
모델들이 지난 16일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진행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의 ‘2024 크루즈 패션쇼’에서 런웨이를 걷고 있다(왼쪽). 이날 경복궁 근처 종로구의 한 건물에서 밤늦도록 소음과 빛 공해를 쏟아내며 이어진 뒤풀이 행사장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트위터 캡처

국내에서 진행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패션쇼가 ‘민폐 논란’에 빠졌다. 구찌는 소음공해로, 루이비통은 24시간 잠수교 일대 통제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면서다. 럭셔리 브랜드가 이색적인 시도를 국내에서 펼치고 있으나 행사 대처는 명품이 아니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경복궁에서 진행된 구찌 패션쇼 애프터파티와 관련해 접수된 소음 신고가 52건에 이른다고 17일 밝혔다. 신고가 처음 접수된 시간은 전날 오후 9시30분이고 마지막 신고는 이날 0시 1분이었다. 약 3분에 1번꼴로 소음 민원이 접수된 셈이다.

구찌는 지난 16일 오후 7시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2024 크루즈 패션쇼’를 열었다. 행사는 오후 8시30분쯤 끝났고, 패션쇼에 초청된 유명인사와 연예인 등이 안국역 근처 한 문화시설에서 애프터파티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아이유, 이정재, 아이돌 그룹 뉴진스 등 약 570명이 초청받았다.

구찌의 이번 패션쇼는 시작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해외 브랜드의 상업적인 패션쇼를 국보인 근정전에서 진행하는 게 적절한 일이냐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크루즈 패션쇼는 휴양지로 떠나는 이들에게 제안하는 의상과 액세서리 등을 선보이는 행사다. 휴양지 패션과 경복궁을 이을 만한 연결고리가 선명하지 않은 데다 국보인 문화재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진짜 문제는 행사 이후 터졌다. 약 2시간30분 동안 52건의 민원이 쇄도할 만큼 소음과 빛 공해를 쏟아내면서다. 패션쇼에 초대받은 유명인들이 벌인 ‘그들만의 뒤풀이 행사’에서는 안하무인 격 소음이 터져 나왔다. 클럽에서 나올 법한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스피커를 건물 밖에 설치한 것으로 착각할 만큼 쿵쿵거리는 소음이 이어졌다. 늦은 밤 레이저 불빛도 수시로 번쩍였다.

이날 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는 9대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경고만으로 해결되지 않자 행사 책임자들에게 경범죄처벌법상 통고처분을 2번이나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건물 바로 옆에 호텔과 레지던스 건물이 있는데, 그쪽에서 신고가 많이 들어왔다”며 “소음이 퍼져나가면서 주변 삼청동과 돈의동 주택가에서도 신고가 다수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뒤풀이 장소에서 도보로 2분여 거리에 있는 호텔의 관계자는 “투숙객들이 ‘우리도 경찰에 신고했지만, 호텔 측에서도 행사 관계자한테 민원을 넣든지 경찰에 신고하든지 조처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구찌 측은 논란이 이어지자 사과문을 배포했다. 사과는 했지만 비판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론사에 배포한 한 줄짜리 사과문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구찌는 홍보대행사를 통해서 “구찌는 주민들이 느끼셨던 불편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진정성이 없는 사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서울 잠수교에서 진행된 루이비통의 패션쇼도 ‘민폐 패션쇼’로 비판받았다. 루이비통은 ‘2023 여성 프리폴(pre-fall) 컬렉션 패션쇼’를 진행하면서 24시간 동안 잠수교 일대를 전면 통제했다. 차량뿐 아니라 자전거와 도보 이동마저 제한하면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쳤다.

서울시는 버스 임시 우회 등 교통 대책까지 가동하면서 루이비통 패션쇼를 지원했다. 서울시는 시민과 함께하는 패션 행사라고 설명하며 행사를 진행했으나, 정작 루이비통 패션쇼에 초청받은 1700여명은 연예인 등 유명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시민들은 함께 즐기기보다 불편을 호소했다.

구찌의 경복궁 패션쇼와 루이비통의 잠수교 패션쇼 모두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패션쇼 자체에 대해서는 호평도 있었으나 ‘그들만의 상업적인 잔치’에 시민들이 희생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구찌의 경복궁 패션쇼도 무대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약 1주일 전부터 방문객을 통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수정 백재연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