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 5:40)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부근의 언덕. 지금은 팔복산이라 부르는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전한 산상수훈 가운데 일부다. 여기서 속옷은 현대인의 은밀한 곳을 가리는 이너웨어가 아니라, 말 그대로 외투 안에 입던 옷을 가리킨다. 겉옷은 양털로 짜곤 했던 두꺼운 외투인 탈릿(talit)이라고 유재덕(60·사진) 서울신학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는 말한다. 그는 “오늘날 유대인들이 회당이나 기도처에서 머리와 어깨에 걸치는 간소한 형태의 탈릿이 아니라, 외출할 때 입거나 추운 겨울밤 이불 대신 덮고 자는 외투”라고 밝혔다.
‘성경시대 사람들의 일상은 어땠을까’를 저술한 유 교수는 이처럼 사소한 일상을 이해해야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고 전한다. 1세기 유대인들은 탈릿과 같은 외투 없이 외출하는 것을 경박한 일로 여겼으며, 다채롭게 염색한 사각형의 이 외투는 고가라서 서민들은 구매할 엄두가 나지 않아 온 가족이 한 벌로 돌려가며 바깥출입을 하기도 했다.
로마에서도 이 겉옷은 비싸서 공중목욕탕마다 외투를 지키는 사람이 따로 있었고, 이스라엘의 극빈자 보호법에는 겉옷을 담보로 잡더라도 일몰 전까지는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규정했다.(출 22:25~26) 외투가 없으면 들판에서 밤의 한기와 습기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악에 대한 보복을 금하고 선으로 응대하라는 산상수훈에서 당시 사람들이 지극히 아끼던 외투는 아주 적절한 비유 소재였다.
음식 여가 옷차림 주거형태 결혼관 출산관 등 성경시대 미시적 생활 모습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열쇠다. 유 교수는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전역을 8년 넘게 답사하며 성경에 나타난 미시적 생활사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는 17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지중해 문명을 중심에 두고 성경을 이해하면 이스라엘로만 한정해서 파악하는 것보다 실로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책은 성경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꾸몄는지에 주목하며 대머리는 예나 지금이나 호감을 얻지 못했다고 밝힌다. 본인의 외모가 준수한 편이 아님을 암시(고전 2:3~4, 고후 10:10)한 사도 바울에 대해 유 교수는 외경 ‘바울과 테클라의 행전’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신장이 작고 머리숱이 적으며 눈썹은 붙었고 약간 매부리코이고 인자한 모습이기는 하되 어느 때는 인간으로 보이고 또 어떤 때는 천사처럼 보인다.” 때문에 유 교수는 “토가를 멋지게 차려입은 연설가들이 대접받던 그리스 문화권에서 바울의 이런 외모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메시지를 전하는데 상당한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 로마 문화에 능통한 지식인이었고 편지 여러 곳에서 스포츠팬임을 암시한다. 고린도전서 4장 9절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를 통해선 원형 경기장 검투사 경기에 익숙함을,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9:24)를 통해선 육상에 관한 관심을 노출한다.
책은 ‘예수님은 하루 몇 끼를 드셨을까’에서 시작해 ‘시에스타와 목욕, 그리고 발 씻기’ 등을 설명하며 당시의 여행도 언급한다. 지금의 해외여행처럼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낭만이 파고들 여지가 없는, 예정된 불운이었다고 강조한다. 식수와 식량의 부족에 들짐승과 날강도 등을 생각하면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떠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 등 후손에 이어 지중해 전역에서 전도 여행을 펼친 사도 바울까지 이해하게 된다. 믿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길을 나섰다는 점을 말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