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사자후] 게임,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중화할 수 있는 ‘중간 대상’으로 충분

입력 2023-05-16 21:06 수정 2023-05-17 13:27

게임은 규칙에 따른 경쟁을 통해 승부를 겨루는 놀이의 일종이다. 게임은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나타나는 고급놀이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게임을 잘 하려면 나의 상황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상대의 마음과 주변 상황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판단이 딱 맞아떨어질 때 게임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자신의 판단과 대응 능력이 우수하다는 피드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운 게임이나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과의 게임은 재미가 없는 법이다.

게임의 재미는 본질적으로 이기는 것 자체에 있지 않다. 이기는 것이 재미의 핵심이라면 쉬운 게임, 실력이 없는 상대와 하는 게임이 가장 재미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게임은 재미가 없다. 배가 고플 때 먹는 음식이 가장 맛이 있는 것처럼 패배를 반복하다 얻는 승리가 가장 값지다. 스스로 실력이 늘고,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승리의 기쁨에 핵심이 된다. 이럴 때 우리 몸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스스로에 대해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말이다. 매일매일 성장하는 청소년 시기에는 일생 중 도파민 분비가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다. 배움과 성장이 집중되는 시기라는 의미다.

배움과 성장이란 나 외에 있는 다른 것을 흡수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작용이다. 나 외의 것, 즉 낯선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필요하다. 성장이 왕성한 어린아이 시기에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도널드 위니캇이라는 학자는 ‘중간대상(transitional object)’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가 늘 곁에 있을 수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두려운 외부세계가 있음을 인식한다. 이때 아이는 불안한 자신의 내면세계와 피할 수 없는 두려운 외부세계를 연결시키는 중간대상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한다. 애착인형이나 공갈젖꼭지가 대표적인 중간대상이라 할 수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중간대상은 끊임없이 바뀐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들이 나타날 때마다 중간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적절한 중간대상을 발견하지 못하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기술이 빠르게 보급되고 정착될 수 있었던 중간대상은 ‘게임’이었다. 놀이를 통해 낯선 대상이 친숙한 대상으로 바뀌고, 또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낯선 기술을 학습하였다. 30년 전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있던 컴퓨터 학원이라는 곳이 사라진 이유는 컴퓨터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컴퓨터를 습득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스마트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챗GPT를 필두로 빠른 인공지능의 발달이 매일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면서 이런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 만일 인공지능과 이를 결합한 로봇이 대중화되기를 바란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중화시킬 수 있는 중간대상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중간대상으로 게임만한 것은 없었다. 챗GPT와 게임을 하거나 혹은 게임을 할 때 이런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승패에 영향을 주는 게임을 만든다면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친숙하고 필수적인 기술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기술혁신의 역사를 통해 볼 때 그렇다는 의미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