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병원 엉터리 기기세척… 지적한 13명 징계도

입력 2023-05-16 00:02
경찰병원 의료기기를 세척한 손세척실에 피 등이 물들어있는 모습. 독자 제공

국립경찰병원이 환자 혈액 등이 묻은 의료기구를 병동의 손 세척 전용 싱크대에서 세척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기구 세척은 감염 예방을 위해 지정된 곳에서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긴 것이다. 경찰병원 일부 간호조무사는 해당 지시가 부당하다며 이행을 거부하다가 무더기로 징계를 받았다.

15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병원은 의료기구 세척을 병동 간호사 처치실 싱크대에서 하도록 했다. 처치실 싱크대 바로 옆에선 환자에게 투약할 주사제가 만들어진다. 주사제 오염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공간에서 오히려 감염 위험을 높이는 행위가 있었던 셈이다.

병동 내부 사진을 보면 처치실 싱크대에는 ‘이곳에서는 손만 씻어주세요’라는 문구도 붙어 있다. 하지만 싱크대에는 피 묻은 의료기구도 놓여 있었다. 처치실 문 앞에도 ‘환자 영역에서 사용한 기구는 뒤쪽 오물처리실에서 처리한다’고 적혀 있다.

경찰병원에는 의료기구의 세척·소독, 멸균 과정을 일괄 담당하는 중앙공급실이 있다. 그런데도 업무상 편의를 위해 이 같은 세척 지시가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내부자료에 따르면 경찰병원 측은 의료기관인증평가를 받는 기간에는 중앙공급실로 의료기구를 보내 세척과 소독·멸균을 하고 이후에는 “세척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병동 처치실 세척 지시를 내렸다.

이 병원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실사 때면 규정대로 업무를 처리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병동에서 의료기구를 세척하는 방식으로 회귀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경찰병원은 실사를 통과해 지난 2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인증한 의료기관(유효기간 5년)이 됐다.

전문가들은 의료기구 세척은 분리된 공간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인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약품을 다루는 곳 바로 옆에서 환자에게 사용한 의료기구를 세척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감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의 ‘의료기관 소독·멸균 지침’에도 ‘세척 과정에서 세척을 담당하는 직원과 주변 사람 및 환경에 오염이나 손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찰병원 내부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묵살됐다고 한다. 간호조무사 13명이 병동 처치실 세척 지시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가 오히려 지난해 12월 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 간호조무사는 “‘원칙을 지켜 일하자’고 했을 뿐인데 오히려 징계를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병원은 징계 처분 여부에 대해 “개인정보 유출 우려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일부 간호조무사는 내부 감사 요청과 함께 관할 보건소에도 신고했지만 “문제가 없다”거나 “강제적 행정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교차 감염 방지를 위해서 의료기구 세척은 별도 공간에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세척 관련 기준이 명확히 의료법과 시행령에서 정해진 것이 없다. 기준이 없는 공백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