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받고 제2의 인생… 제 삶은 더 이상 나만의 것 아니죠” 장기이식인·기증 유가족, 감사와 위로의 만남

입력 2023-05-15 03:03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이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아트스페이스 선에서 열린 특별 사진전 ‘장미-찬미’ 기념식에서 장기이식인들에게 노란 장미를 전달하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전기섭(45)씨는 2021년 10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소율(4)양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냈다. 1년 넘게 희귀성 폐암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눈을 감은 지 불과 몇 개월 만이었다. 소율양은 난임을 극복하고 얻은 딸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 가지 못했다. 소율양이 3살 되던 해 예기치 못한 익수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사고로 소율양의 뇌는 모든 기능을 잃었고 얼마 되지 않아 뇌사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 전씨는 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고 소율양은 심장과 신장을 기증하고 엄마 곁에 영원히 잠들었다. 전씨는 “하늘나라에도 어린이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딸이 꿈에라도 나타나 환하게 웃어주면 소원이 없다”고 그리움을 나타냈다.

신경숙(56)씨는 메르스 유행으로 혼란스러웠던 2015년 사랑하는 딸 박준희씨를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빼먹지 않고 챙기던 다정한 딸이었다. 박씨는 그해 6월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다 사고 9일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는 심장과 신장을 기증해 3명의 환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했다.

유가족이 사진전을 둘러보는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가 11일 서울 서대문구 아트스페이스 선에서 특별 사진전 ‘장미-찬미’ 기념식을 개최했다. 사진은 장기기증자의 유품이나 추억을 간직한 장소 등을 소재로 유가족의 표정과 분위기를 담았다.

2010년 각막이식을 받은 서지원(28)씨는 감사편지를 낭독했다. 서씨는 “각막을 이식받은 후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제 삶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면서 “이식 과정을 거치며 책임감과 감사함, 용기를 얻었다. 가장 가치 있는 결정을 해준 유가족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췌장이식인 피아니스트 이승진(37)씨는 쇼팽 ‘에튀드’ ‘환타지’ 등을 연주하며 화답했고, 신씨는 딸을 생각하며 쓴 시 ‘사랑’을 낭독했다. 이날 장기이식인들은 유가족에게 감사의 의미로 분홍 카네이션을 전달하고, 유가족도 이식인들에게 노랑 장미를 선물하며 서로 위로했다.

특별 사진전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의 숭고한 사랑을 기리는 ‘로즈디데이(5월 14일)’를 기념해 마련됐으며 15일까지 진행된다.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