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동은 행복할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아동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다. 양육과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기거나, 아동 문제는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인식 속에서는 학대를 비롯한 여러 아동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부모의 정상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들도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2019년 7월 아동권리보장원이 출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자립준비청년 지원, 아동학대 예방, 실종아동 찾기, 아동보호 등의 사업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2대 원장으로 취임한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동권리보장원은 우리 시대의 방정환 선생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이라며 “아동을 위한 기관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아동들에게 힘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역할이 제대로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죽은 아이는 돌아오지 않아… 예방 중요
아동 정책은 후순위인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때는 주로 아동 학대 등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 정도다. 정 원장은 ‘부모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접하는 사건들은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최악의 상황일 때가 많으므로 대부분 부모는 ‘나는 저렇지 않아. 나는 학대하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모르는 사이 아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완벽한 부모가 아닐 수 있다’는 성찰을 하면서 하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학대 아동을 조기 발견하고, 모든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아동 정책 추진방안’을 지난달 확정했다. 필수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거나, 1년간 의료 기관 진료 기록이 없는 만 2세 아동에 대해서는 전수 조사도 벌인다. 정 원장은 “일반 아동을 더 건강하게, 취약 아동을 더 두텁게 지원하기 위한 추진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이라며 “국가의 아동보호 책임을 강화하는데 보장원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장원은 학대 피해 아동 발굴과 동시에 방문형 가족 회복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등 사후지원 서비스도 강화키로 했다.
정 원장은 “죽은 아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위기 아동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학대를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부모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보장원이 플랫폼이 돼 양육의 고민이 생길 때 부모가 자료도 찾을 수 있고, 작은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역할을 넓혀 가야 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정 원장은 국민일보 ‘자립준비청년에 희망디딤돌을’ 캠페인 자문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멘토링을 통해 지지 기반을 마련하고, 진로나 취업 교육 등 실질적 자립을 위한 도움을 준다는 취지에 공감했다고 한다. 정 원장은 “전문가로서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국민일보가 큰 첫걸음을 떼 줘서 감사하다”며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향한 관심 덕분에 민간 지원이 늘어나고 있고, 멘토링이나 법률자문, 취업 등 다양한 서비스 연계로 이어져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보장원은 지난달 자립준비청년이 직접 상담을 해주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선배 자립준비청년이 전화나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정보를 안내해주고, 상담을 제공하게 된다. 정 원장은 “매년 2000여명의 자립준비청년이 (사회로) 나오는데, 선배가 직접 지지도 해주고 정보를 주면 일반 상담원이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며 “상담사로서 일자리 역할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도 권리 주체로 존중받아야”
2018년 아동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장원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이후 2019년 중앙입양원과 아동자립지원단, 드림스타트사업지원단, 실종아동전문기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지역아동센터중앙지원단, 중앙가정위탁지원센터, 디딤씨앗지원사업단 등 8곳의 기관이 한데 합쳐져 보장원으로 출범했다. 지난달 17일 새로 취임한 정 원장은 한국청소년복지학회 회장, 한국아동복지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오랜 기간 아동복지 관련 정책에 조언해 온 아동복지 분야 전문가다.
정 원장은 “아동 관련 사업에 자문도 하고 연구도 했지만, 외부자로서의 역할은 한계가 있었다”면서 “8개 기관이 물리적 통합을 넘어 화학적 통합으로 가고 있는 단계인 만큼, 보장원 통합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보장원의 역할은 각 기관이나 민간의 역할이 돋보일 수 있게 하는 수준이었다.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아동 정책 주체들의 역할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 때문에 분절돼 있던 정책을 통합 관리하는 기관이 출범했다는 점은 의미가 컸지만, 동시에 보장원의 존재감이 약하다는 딜레마도 있어 왔다.
정 원장은 “설탕이나 소금처럼 보장원이 크게 드러나진 않더라도 성찬이 만들어지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잘하는 일은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하고, 특히 아동 정책을 담당하는 보장원 직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동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면서도 온전한 권리 주체로 존중받고 정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존재”라면서 “아동 권리 인식 개선을 위해 보장원이 계속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