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현행 공정거래법만으로 급변하는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을 방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칫 자율규제가 자리 잡는 동안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굳어질 수 있어 신속한 입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지난 1월 ‘온라인 플랫폼 규율 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효과적인 플랫폼 규제방안을 검토 중이다. TF는 지난 9일까지 6차례 회의를 했다. 최근 회의에선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시장법(DMA)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EU의 DMA는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 규제로 꼽힌다. 규제 대상과 규제 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다른 플랫폼 관련 규제보다 엄격하다는 평이다. 특히 DMA를 통해 시장 영향력이 큰 ‘게이트키퍼’로 지정돼 규제를 받게 되는 기업들로선 부담이 크다. EU는 이달 게이트키퍼 지정 절차에 돌입했는데, 구글과 애플 등 미국 플랫폼 기업도 게이트키퍼로 지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공정위도 이와 유사하게 시장 영향력이 큰 국내외 5~6개 ‘대규모 플랫폼’ 기업을 지정해 규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규모 플랫폼 기업으로 지정되면 시장 획정, 시장 지배적 지위 판단 등 현행 규제 방식에서 가장 오랜 기간이 걸리는 단계가 단축된다. 공정위 입장에서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독과점행위뿐 아니라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할 수 있는 일반 불공정행위까지 새로운 온라인플랫폼법안에 포함시키면서 과잉규제라는 지적도 있다. 여당 내에서도 온플법 제정에 대해 일부 반대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플랫폼 독과점 문제와 관련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율규제에서 입법으로 선회했다는 분석도 있다. 2021년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논의 당시 방송통신위원회와 주도권 싸움이 있었던 만큼 선제적으로 플랫폼 시장 규제 방안을 내놓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부처 간 알력싸움에 자칫 ‘졸속 입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한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10일 “미국 독일 등은 수년간 관련 논의를 진행했음에도 의견 합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신속한 입법에만 급급해 법 제정 목적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입법으로의 선회가 자국 플랫폼을 보호하려는 미국 중국 대만 등 국제적 추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미 의회에는 미국혁신과선택법(AICOA), 오픈앱마켓법(OAMA) 등 플랫폼 규제법안이 발의됐으나 과잉규제에 대한 우려로 지난 1월 미 의회 회기 종료와 함께 모두 폐기됐다. 중국도 지난 1월 알리바바 텐센트 등 자국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자국 내 플랫폼이 전무하기 때문에 강력한 법안을 마련한 것”이라며 “공정위의 새로운 정책이 토종 플랫폼업체를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