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경기도 화성에서 50대 남성 A씨가 60대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육절기로 훼손해 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수사기관도 피해자 집 방화 혐의만 적용해 A씨를 기소하는 등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A씨가 버린 육절기가 확보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육절기에서는 피해자 DNA와 일치하는 근육, 뼛조각 등 생체조직이 나왔다. 검·경은 이를 근거로 A씨에게 살인·사체유기 혐의를 추가 적용해 기소했고, 2016년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대검찰청은 10일 서울대와 공동개최한 ‘제7회 법과학 DNA 국제 심포지엄’에서 ‘육절기 살인사건’ 등 주요 과학수사 성과를 공유했다. 앞으로 도입될 과학수사 기술에 대한 소개와 수사 활용 방안도 함께 논의됐다.
서울대 법의학교실 이환영 교수 연구팀은 DNA를 통한 인체조직 구별 연구를 수행 중이다. DNA 분석을 거쳐 발견된 생체조직이 정확히 어떤 장기에서 나왔는지까지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육절기 살인사건에서 단서를 얻어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기술이 육절기 사건에 적용되면 수습된 A씨 생체조직이 뇌조직인지, 심장조직인지까지 확인할 수 있다. 살인 현장이 아닌 경우 발견되기 어려운 뇌와 심장 조직이 DNA 분석 결과로 확인된다면 시신이 없어 범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도 이를 반박하는 유력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올해 안에 기술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대검도 이르면 내년부터 해당 기술을 실무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팀은 2017년 친부가 지적장애가 있는 미성년자 친딸을 성폭행한 사건에서 착안해 정액을 통한 연령 추정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당시 유력 증거로 제시된 이불에서는 피의자인 친부와 아들의 정액이 함께 검출됐다. 용의자 2명이 동일 부계로 DNA가 일치해 범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는데, 연구팀의 개발 기술이 적용된다면 연령 범위 추정이 가능해진다. 나이대를 확인해 진짜 범인을 특정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심포지엄에서 미국 법과학연구교육센터 부국장인 미르나 검라위 박사는 남녀 개개인의 성기에 분포하는 박테리아·바이러스 등 미생물 군집은 사람마다 상이하며, 성폭행 등 성접촉이 이뤄질 때 상대 쪽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이 연구가 실무에 적용되면 체액이 발견되지 않아 범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사건에서도 생식기 미생물 군집 분석을 통해 성폭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