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서울, 마이 소울

입력 2023-05-11 04:10

뛰어난 로고 하나가 도시를 변화시킨다. 1977년 미국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만든 ‘아이 러브 뉴욕(I♥NY)’이 그렇다. 검정 글씨에 빨강 하트 문양의 심플한 이 로고는 단숨에 뉴욕을 범죄가 들끓는 도시에서 여행가고 싶은 도시로 변모시켰다. 평생을 뉴요커로 산 글레이저는 로고 저작권을 뉴욕시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상업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 4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 브랜드 로고로 평가받는다. 그는 딱 한 번 이 로고를 재디자인했다. ‘아이 러브 뉴욕 모어 댄 에버(I♥NY MORE THAN EVER)’. 나는 이전보다도 더 많이 뉴욕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위로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지난 3월 뉴욕시는 이 유명한 아이 러브 뉴욕 대신 새로운 슬로건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영 좋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자는 의미로 ‘위 러브 뉴욕시티(We♥NYC)’로 바꿨는데 반대 의견이 월등히 높다고 한다.

서울시는 어떨까. 서울시가 처음 도입한 슬로건은 2002년 이명박 시장 재임 시절 ‘하이 서울(Hi Seoul)’이다. 이 슬로건이 ‘아이 서울 유(I Seoul U)’로 비뀐 건 2015년 박원순 시장 때다. 그리고 2022년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후 또 교체 작업이 시작돼 최근 새 슬로건이 확정됐다. 21년 동안 3번 바뀐 것이다. 새 슬로건은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 서울과 소울의 발음이 비슷한 점에 착안한 것으로, 서울은 나의 영혼 또는 영혼을 채울 수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10일 슬로건 디자인 4개가 공개돼 시민 투표가 시작됐다.

서울도 뉴욕처럼 세계인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될 슬로건이 있으면 좋겠다. 여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흔적 지우기처럼 바꾸는 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세계는커녕 서울 시민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새 슬로건을 개발하고, 이전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데 엄청난 세금이 들어간다는 건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