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으로 탄핵 심판대에 오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첫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했다.
이 장관은 헌재 대심판정에 들어서며 “국정 공백과 차질을 조속히 매듭짓고 모든 것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심리에 성심껏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 측 대리인은 변론 중 좌중을 향해 “이 자리에 계신 분 중 참사를 예측하신 분이 있느냐. 저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책임론을 부인했다.
국회 측은 참사 이틀 전 서울 용산경찰서 보도자료 등을 근거로 들며 충분히 예방 가능한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핼러윈’ ‘이태원’ 단어의 검색량 폭증, 10만명 대규모 인원의 운집 등을 경찰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폭이 좁은 경사 길에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국회 측은 “당시 현장 소방 간부는 ‘구조대원들은 시간이 있으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활동에 급급하지 전체 상황 판단은 어렵다’고 진술했다”며 “전체적 상황을 총괄해야 하는 것은 행안부 장관이고, 그것이 재난안전법 취지”라고 말했다. 탄핵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묻고자 한 것이 아니며, 이 장관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직무를 태만히 한 데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반면 이 장관 측은 이태원 참사는 과학적으로 예측 가능한 태풍·지진 등 자연 재난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군중이 밀집해 즐기는 상황은 재난일 수 없으며, 사고가 발생해야 재난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군중 밀집 우려만으로 밀집 해소를 시도한다면 기본권 침해나 자유민주주의 통제로 비판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 장관 측은 “재난안전법은 현장 중심 대응 원칙을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며 “대규모 재난 긴급구조는 중앙행정기관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긴급구조기관으로 하여금 지휘·통제하도록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과 생존자의 증인 채택 여부는 이날 심리에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 장관 측은 “유족과 생존자가 어떤 아픔을 갖고 있는지 충분히 안다”면서도 “이 장관 관련해 유의미한 진술자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또 “유족이 밖에 나가 시위도 하고 시끄러웠는데 법정 혼란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한 유족은 재판 후 이 장관에게 “잘 계십니까, 오랜만입니다”라고 성난 어조로 쏘아붙였다. 이 장관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심판정을 빠져나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