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난해 1월 25일 오후 부산 연제구 도로를 음주 상태로 10㎞ 정도 달리다 경찰 단속에 걸렸다.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91%. 그는 음주운전 전과만 7번이었다. 법정에 선 그에게 판사는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현저히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판사는 A씨에게 실형이 아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반성하고 있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8일 국민일보가 지난해 처벌받은 음주운전 6회 이상 재범자 판결문 50건을 분석한 결과 음주운전자의 평균 혈중알코올농도는 0.132%였다. 면허 취소 기준(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을 훌쩍 넘는 만취 상태에서 운전대를 다시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들 중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28건(56%)에 그쳤다. 징역형 집행유예가 20건(40%), 벌금형이 2건(4%)이었다.
집행유예 선고 양형 사유를 보면 법원은 A씨처럼 음주운전 재범자의 ‘반성 의지’를 주된 감경 요소로 판단했다. 과거 수차례 음주 상태에서 차를 몰다 적발됐더라도 반성과 개선 의지를 보여준다면 실형을 면해주는 것이다. 법원은 음주운전 재범자의 반성 의지를 ‘반성문’ ‘음주운전 교육 수료증’ 등으로 판단했다. 3~4회 음주운전 재범자 판결문에서도 “재범방지 교육과 심리상담을 스스로 받는 등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반성이 음주운전 재범자의 감형을 위한 ‘꼼수’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일부 법률사무소는 음주운전 재범자를 상대로 ‘반성문 쓰는 법’을 홍보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설 심리교육센터도 ‘감형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법률사무소가 음주운전 재범자의 감형을 위해 법적인 조력을 하는 수준이라면, 심리교육센터는 반성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교육 수료증 등도 제공한다.
실제 3차례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던 B씨는 C심리교육센터에서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 덕에 구형량을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B씨는 ‘C센터의 상품을 이용해 봐라’는 변호인 권유를 듣고 상품을 결제했다. 이어 음주운전 재범방지 교육을 마친 뒤 센터로부터 교육 수료증, 금주 및 음주운전 근절 서약서, 반성문, 탄원서 등을 받았다. 이후 B씨는 “검사 구형량이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 재범방지 교육 수료증 덕분이다”는 후기를 남겼다.
C센터는 모두 9가지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대는 최소 5만원에서 최대 49만9000원까지 됐다. 가격이 오를수록 제공하는 반성문 건수와 교육 프로그램이 추가되는 식이다. 가장 비싼 프리미엄 상품의 경우 2건의 교육 수료증, 1건의 캠페인 활동 증명서, 3건의 반성문, 2건의 탄원서 등을 제공한다.
기자가 직접 상품을 결제해보니 3시간도 채 안 돼 9건의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음주운전 재범방지 및 준법정신 강화 교육은 온라인으로 이뤄지는데, 각각 1시간과 20분 남짓 길이의 동영상 시청이 전부였다. 동영상을 보지 않아도 수료증 발급은 가능했다. 교육 이수 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나 제출해야 하는 과제도 없었다.
반성문과 서약서도 모두 C센터에서 대신 작성해준 것이었다. 반성문에는 “교육을 시청하며 얼마나 잘못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코로나로 가정과 회사에서 힘든 일이 많아 술에 의존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반성하고 있다”는 문구가 담겼다. 심리상담사는 단 한 차례도 상담하지 않은 채 “피상담자는 철저한 반성과 재범방지 의사를 갖고 교육과 상담에 참여했다. 상담 후 재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밝혔다”는 의견서를 써줬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료증은) 음주운전 재범자들이 교육을 통해 반성하고 재범하지 않겠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인데, 감형을 위해 거짓으로 제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환 이가현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