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생산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논란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야당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잡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1호 법안’ 명패를 건 이 법안은 지난달 국회 본회의 재투표에서 부결될 때까지 8개월가량 정국을 달궜다.
급한 문제였다면 그럴 만도 하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었다는 반성이 나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8일 기준 가마니(80㎏) 당 쌀 소매 가격은 20만8000원이다. 윤석열정부 출범을 이틀 앞둔 지난해 5월 8일 가격(20만5340원/80㎏)과 비교해 소폭이나마 더 올랐다. 수치만 보면 쌀값 문제는 당장 해법이 필요할 정도로 시급한 현안이었다고 평가하기 힘들어 보인다.
쌀 가격 안정세는 정부가 현행 제도만으로도 쌀 수급을 잘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쌀 수확기인 지난해 9월 25일 긴급 예산을 투입해 90만t의 쌀을 추가 매입했다. 가격 급락을 막기 위한 이 조치는 불과 열흘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같은 해 10월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열흘 전보다 16.7%나 반등했다. 이후 이 가격은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쌀 수급 안정화를 위해 타작물 재배를 유도하기 위한 첫 발도 뗐다. 농식품부는 올해 처음 시작한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쌀 대신 밀·콩·가루쌀 등 작물을 재배하면 직불금을 주고 있다. 전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도 상시 사업으로 전환했다. 이는 쌀 생산량을 줄여 과잉공급된 상황도 해소하지만 식량자급률을 향상하는 효과 역시 기대하게 만드는 사업이다. 농식품부는 이 제도를 활용해 올해 기준 48.0%인 식량자급률을 2027년까지 55.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결론적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없이도 쌀 수급 안정과 식량주권 확보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축산 정책 변화도 지난 1년간 농정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 중 하나다. 우선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가축 살처분 정책이 현실에 맞게 정비됐다. 그 결과 조류 인플루엔자(AI)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면 걱정해야 했던 계란 가격 급등 우려가 1년 사이 해소됐다. 수요 대비 공급이 많은데도 가격이 오르는 기형적인 우유 가격 결정 구조도 현실화됐다. 농식품부와 낙농업계는 지지부진했던 우유 가격 결정 구조 변경 논의를 지난해 9월 마무리했다. 정권 교체에 따른 농식품부 장관 교체 이후 축산업계가 호의적으로 대응한 영향이 컸다.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농식품부는 2027년까지 청년 농업인을 3만명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청년을 농촌으로 끌어들일만한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농업인 가구는 2020년 기준 1만2000여 가구에 불과하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자체 농협 등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