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강사 A씨는 근무하던 학원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한 달 치 수강료를 전액 보상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입사 할 때 학원 측 요구로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그 안에 ‘계약만료까지 근무, 그 이전 그만둘 시 맡은 반 학생 전원의 한 달 치 수강료를 보상할 것’이란 조항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A씨는 퇴직 뜻을 밝힌 이후로 학원 측의 반복적인 협박과 금전 배상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 제정 70주년을 맞아 8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근로계약 갑질 사례 637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단체에 따르면 637건의 사례 중 근로계약서를 아예 작성하지 않거나, 작성은 했지만 근로자가 받지 못한 사례가 44.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A씨 경우처럼 ‘갑질 조항’이 담긴 근로계약서 작성도 191건으로 30.0%에 달했다. 한 마트 협력업체 소속 기사의 경우 퇴사 2개월 전 고지를 해야 하고, 그 전에 퇴사할 경우 용차 비용을 부담한다는 조항이 담긴 근로계약서에 서명해야 했다. 근로계약서 작성 시 ‘입사 후 1년 내 퇴사 시 교육 기간에 받은 급여는 모두 반환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는 근로자도 있었다.
이어 거짓 채용 광고, 채용 강요 등 채용절차법을 위반한 사례(138건·21.7%),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만 프리랜서 등으로 위장 계약하는 ‘가짜 계약서’ 사례(128건·20%)도 적지 않았다.
김기홍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근로계약은 근로관계 성립의 전제고 기본적인 권리·의무 발생의 근거가 된다”며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의 계약 갑질로 인해 계약서를 둘러싼 법률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제 개선을 위해 법과 제도의 보완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형식에 불과한 계약서를 근로자성 부정의 유력한 근거로 삼는 노동 행정에 문제가 있다”며 “궁극적으로 근로자 스스로가 근로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에서, (근로자가 아닌 독립 사업자라는 점을)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이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