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좋은 기회로만 여겨지던 시중은행의 해외 파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국제적으로 자금세탁 방지 관련 규율이 엄격해지면서 파견 근무자의 부담도 함께 늘어난 탓이다.
국내 은행들은 글로벌 은행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외지점을 꾸준히 늘려왔다. 은행에서 해외지점 근무는 큰 메리트로 받아들여졌다. 일부 인기 지역은 경쟁률이 100대 1이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의 자금세탁방지(AML) 절차 준수 의무와 제재 수위가 강화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국 은행뿐 아니라 외국은행의 자금세탁에 대해서도 엄격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자금세탁방지 관련 업무규정이 무려 150가지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아주 복잡하다”며 “규정을 위반하면 수십 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은 거액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2018년부터 올해 3월까지 국내 6대 은행이 해외 금융당국에서 받은 징계만 85건이다. 과태료는 1230억원에 육박했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30건과 28건으로 가장 많았다. IBK기업은행은 미국에서 무려 1000억원대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은행 조직 내에서 소위 잘 나가던 일부 직원은 미국 근무 기간 중 거액의 과태료 폭탄을 맞은 이후 ‘커리어’가 망가졌다는 후문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국가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미국은 자녀 교육 등을 위한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인기가 비교적 많은 편”이라며 “다만 한 해외지점 안에서 담당하는 업무도 많고 부담도 커져서 과거처럼 마냥 좋게만 여기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해외지점에 부과된 거액의 과태료는 국제 기준에 못 미치는 국내 은행의 내부통제시스템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샐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