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국군포로들, 김정은 상대 손해배상 승소

입력 2023-05-09 04:06
사진=연합뉴스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붙잡혔다가 탈북한 국군 포로 김성태(91)씨는 8일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판사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이며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지 약 2년 8개월 만에 승소한 직후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2단독 심학식 판사는 김씨 등 국군포로 5명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소송에 참여한 5명 중 3명은 선고가 나기 전 사망했다. 재판부는 소송을 승계한 유족 1명을 비롯해 모두 3명에게 북한이 각각 5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김씨 등은 6·25전쟁 중 포로로 붙잡혀 북한에 끌려간 뒤 1953년 9월부터 북한 내무성 건설대에 배속돼 33개월간 탄광에서 노역했다고 주장했다. 전쟁 당시 소년병이었던 김씨는 개전 사흘 후 다친 중대장을 업고 달리다 북한군이 쏜 포탄의 파편에 맞아 부상당하면서 포로로 붙잡혔다. 이들은 2000~2001년 차례로 탈북했다.

소송은 2020년 9월에 제기됐지만, 북한에 소장을 공시송달하는 과정이 지체되면서 재판 개시가 늦어졌다. 심 판사는 지난달 17일 소송 제기 후 약 31개월 만에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어 이날 “피고의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그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이 명백하다”며 북한의 책임을 인정했다.

김씨는 “오늘 이 뜻깊은 날을 위해 조국에 돌아왔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선고를) 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배상금액을 모두 나라에 바치겠다.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앞서 다른 국군포로 2명이 2020년 7월 북한의 배상 의무를 인정받으며 첫 승소했지만, 배상금을 받기 위한 추심금 청구 소송에서는 1심 패소했다. 조선중앙TV 등 북한의 영상 저작물을 국내 유통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에 배상액을 대신 지급하라고 요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당시 서울동부지법은 북한은 권리·의무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경문협에 대해 채권자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