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경기회복’ 야심찬 기치, 국민 체감도는 낮다

입력 2023-05-08 04:07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년간 윤석열정부 경제 정책은 재정건전성과 경기회복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0조원을 훌쩍 넘긴 국가 채무 사태 완화를 위해 재정준칙 마련을 비롯한 지출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내수 활성화 대책, 수출 지원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 대응에 나섰다. 비용 절감과 복지를 동시에 챙기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받아 든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다. 반도체·대중 무역 악화로 수출은 수개월째 지지부진하다. 물가 상승률은 안정돼 가고 있지만 서민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다. 정부가 투자 활성화 명목으로 꺼내든 감세와 규제 완화 카드는 연초부터 세수 부족 우려를 키우고 있다. 국내외 기관들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하향하는 추세다. 벼랑끝에 내몰린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번 정부 경제팀이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확장재정서 건전재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혈세를 허투루 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재정을 최대한 건전하게 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여파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가 400조원 넘게 늘어난 것을 바로잡겠다는 의도였다.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는 2023년도 예산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올해 예산은 638조7000억원 규모로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전년보다 지출이 감소했다.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 정원을 1만2000명 이상 줄이는 인력 감축안 가동과 함께 정부 위원회도 30% 이상 줄였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절약한 돈을 민생 대책 마련에 쓰겠다고 공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새 정부 첫 본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재정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공공주택 임대료 동결과 유류세 인하 연장 조치 등을 단행했다.

수출 부진·고물가… 성장률 ‘빨간불’

각종 노력을 더했지만 경기 개선에 대한 국민 체감도는 아직 그리 높지 않다. 우선 수출 부진이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취임 1년간 수출 확대에 사활을 걸었지만 반도체 업황 악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가 발목을 잡았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496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4.2% 줄었다.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연속 뒷걸음 치고 있다. 월간 무역수지도 지난해 3월 이후 1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감으로 반도체 매출이 부진한 원인이 크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8월부터 9개월 연속 하락세다. 이는 대중 수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었던 중국과의 무역적자는 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하반기부터 반도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낙관한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 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이외 국가로 수출선을 다변화 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물가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7월 가뭄 등으로 채소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정점인 6.3%를 찍었다.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찾았지만 지난해 연간 물가 상승률은 5.1%를 기록했다.


정부는 물가 잡기를 최우선 목표로 경제 정책을 집행해왔다. 지난해 7월 소고기 등 7개 품목에 할당관세 0%를 적용해 생활물가 안정도 시도했다. 그해 9월 추석 명절에는 650억원 규모의 농축수산물 할인쿠폰을 지원했다. 노력이 축적되고 유가가 하락하며 지난달 소비자 물가는 3.7% 늘어나는 데 그쳤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활용하는 근원물가 지수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지난해 8월 이후 여전히 4%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물가 상승 흐름 자체는 꺾이지 않은 셈이다. 또 지난 1년간 전기·가스·수도 가격이 20.6% 상승해 서민들의 체감물가가 높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조만간 올해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안이 발표되면 물가가 또 한번 요동칠 수 있다.

수출 부진과 고물가 여파로 일각에선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 중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올 하반기 무역수지 개선에 따른 ‘상저하고’ 경제를 기대하고 있지만 경기 개선세가 흐릿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1.7%에서 지난달 1.5%로 하향 조정한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친기업 감세 정책에 세수 구멍 우려

여기에 세수 부족 위기까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3월 누적 국세 수입은 87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조원 줄었다. 2000년 이후 역대 최대 감소폭이다. 법인세 인하 등 각종 세금 인하 정책 여파로 분석된다. 정부가 내세웠던 건전재정 기조가 무색해 진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주식 양도세 비과세 기준 상향(10억→100억원)과 종부세 완화 등도 부자 감세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세수 구멍을 메우기 위한 세제개편 등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최근 대통령실 출입 기자단과 만나 “변화 방향을 수정해야 하는 것은 수정할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세종=박세환 심희정 권민지 이의재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