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에서 환자를 받아주지 않은 병원 4곳에 과징금 등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17세 외상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을 찾아다니다 결국 숨진 사건을 조사해온 보건 당국은 이 병원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수용을 거부했다고 결론지었다. 첫 번째 병원은 응급의료법에 규정된 환자 중증도 분류조차 하지 않은 채 “정신건강의학과를 통한 진료가 필요해 보인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다. 두 번째 병원은 “병상이 없고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이라고 했지만, 조사 결과 가용 병상이 있었고 다른 환자는 상당수가 경증이었다. 응급환자에게 어떤 진료가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환자 수술이 시작됐다”거나 “신경외과 의료진이 부재 중”이라며 거부한 세 번째, 네 번째 병원의 행위도 응급의료법 위반에 해당했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 현장에서 법에 명시된 규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의료계의 자성이 필요하다.
이 사건은 몇몇 병원과 의료진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응급의료체계의 구조적 결함을 드러냈다. 지난해 119 구급차가 병원의 거부로 응급환자를 재이송한 건수는 6840건이었다. 2018년(5068건)보다 26%나 늘었고, 이 중 1062건은 두 곳 이상에서 거부당해 대구 사건처럼 구급차가 ‘뺑뺑이’를 해야 했다. 이런 현실은 지난해 중증 응급환자의 52%가 적정시간 안에 응급실에 도착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병원의 거부 사유는 ‘전문의 부재’와 ‘병상 부족’이 가장 많았으니 해결책은 의사를 확충하고 병상을 늘리는 것일 터여서, 정부는 현재 40곳인 중증응급의료센터를 60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단순한 시설 확충만으론 응급의료 시스템의 허점이 메워지지 않으리란 회의적 시각이 많다.
이 사건 이후 대구소방안전본부는 ‘119구급지휘팀’을 만들었고, 대구의 6개 종합병원이 이 팀에 응급환자 이송병원 지정 권한을 위임했다. 전산망을 연결해 각 응급실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며 환자를 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생긴 것이다. 지역마다 광역단체, 소방 당국, 의료기관의 협업을 통해 이런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이 시설 확충과 병행돼야 한다. 우리나라 응급실은 구급차에 실려 오는 환자가 20%에 불과하다. 경증 환자들이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통에 정작 중증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응급실 과밀화 현상을 앓고 있다. 응급실 문턱을 높이는 제도 정비와 인식 개선에 전력을 기울여야 응급의료를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