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1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소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 전망이 나왔다. 국가 가계부 성격인 경상수지가 급감한 데는 국내외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세계 경제 부진으로 국가 매출이라 할 수 있는 수출은 줄어드는데 내수 등 씀씀이는 늘다 보니 가계부가 얇아졌다는 분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3일 ‘최근 경상수지 변동요인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 경상수지가 160억 달러 흑자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록한 18억 달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흑자 규모(298억 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김준형 KDI 경제전망실 모형총괄은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국내총생산 증가세가 둔화된 가운데 교역조건이 하락하면서 실질소득은 감소했다. 반면 내수는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소득에서 내수를 뺀 경상수지가 하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DI는 지난 2월 전망치(275억 달러)보다도 흑자 규모를 115억 달러 하향 조정했다. 세계 경제 부진이 지속되는 올해 상반기의 경우 1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된다면서 연간 경상수지 규모를 대폭 줄였다. 한국은 지난 1월 기준 역대 최대인 45억2000만 달러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정부 등이 제시한 1.5%보다 0.4% 포인트 낮은 1.1%로 평가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경상수지 악화는 내수 증가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4% 증가하며 2월(5.3%)에 이어 두 달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지출이 늘어나다 보니 경상수지가 더 줄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런 현상은 하반기부터 개선될 전망이다. KDI는 올해 하반기에 한국이 260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를 내며 상반기 적자분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S&P 역시 한국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액이 올해 하반기부터는 반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외환위기 우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한국 외환보유액과 순대외자산 상황 모두 외환위기를 겪은 타국에 비해 현저히 양호한 상태에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가 ‘상저하고’ 전망에 부합할 거라는 긍정적인 분석도 있다. 하지만 반도체 편중 수출 구조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신성장 산업(차세대 반도체·차세대 디스플레이·전기차·이차전지·바이오헬스)의 전 세계 수출 규모는 약 3조1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대다수는 차세대 반도체가 차지한다.
홍지상 무역협회 연구위원은 “한국 수출의 약 3분의 2가 차세대 반도체에 편중돼 있고 반도체를 제외한 신성장 산업 수출 비중은 1~3%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김혜원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