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석달치·5회 상습 체불 ‘악덕 사업주’ 돈줄 죈다

입력 2023-05-04 04:04

건설업자 박모(60)씨는 공사현장 근로자 임금 4억5000여만원을 떼먹고 도주했다. 74명의 피해자 대부분은 외국인근로자나 여성이었다. 박씨는 이전에도 전국의 고용노동지방청에 진정사건만 365건이 접수될 만큼 상습적인 임금체불로 악명이 높았다. 건설사를 차명으로 운영하며 법망을 피해오던 그는 지난해 12월 한 공사현장에서 붙잡혀 구속됐다.

과외교습업소를 운영하던 최모(41)씨는 사회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을 노렸다. 대학생들을 과외교사로 고용한 뒤 매월 임금을 부족하게 입금하는 수법을 썼다. 피해자들이 추가 임금을 요구하면 ‘곧 주겠다’고 한 뒤 잠적했다. 1600여만원을 체불한 최씨는 노동 당국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다가 지난달 구속됐다. 최씨 역시 이미 76명에 대한 임금 체불로 17번이나 형사처분을 받은 상습범이었다.

정부는 3일 이와 같은 상습 임금체불업자에 대해 별도의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내용의 ‘상습 임금체불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한 해 임금체불 규모가 1조3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지만, 형사처벌 수위가 낮아 예방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고의적·반복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임금체불 자료를 신용정보기관에 제공하기로 했다. 대출·이자율 심사나 신용카드 발급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지원사업 참여가 제한되고 공공사업 입찰 시에도 감정을 받아야 한다. 다만 융자제도 활용 등 구체적인 임금 청산 계획을 제출하면 관련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재를 면해주는 방안도 운영할 계획이다.

상습체불로 판단하는 기준은 최근 1년 내에 3개월 치 이상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다수 근로자에게 5회 이상 체불하고 그 총액이 3000만원 이상인 경우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지난해 임금체불액의 60% 정도(약 8000억원)가 상습체불에 해당한다.

정부가 일정한 체불임금을 대신 지급한 뒤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지급금’ 제도도 개선된다. 박씨와 최씨는 모두 대지급금 제도를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진정 취하를 요구하면서 정작 정부에는 돈을 상환하지 않았다. 고용부는 고액채무 반복수급 사업장을 집중 점검하고 장기 미회수 채권에 대해서는 자산관리공사에 위탁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체불 청산을 위한 사업자 융자 요건을 완화하고 지급 한도도 늘릴 방침이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