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들 의견도 안 듣고 ‘택시 목적지 미표시’ 법안 진통

입력 2023-05-04 00:03
정부가 택시 승차난 해법 중 하나로 제시한 ‘목적지 미표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다. 법안은 승객이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할 때 택시기사가 목적지를 알 수 없게 해 ‘승객 골라 태우기’를 근절하자는 취지로 발의됐다. 하지만 플랫폼 업계에서는 택시 규제가 ‘제2의 타다 금지법’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는 지난달 25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심사했지만 목적지 미표시 강제 조항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은 플랫폼 중개 사업자가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사전에 고지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택시들이 단거리 승객을 피하고 목적지에 따라 승객을 골라 태우는 현상이 빈번해 이용자 불편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유료 호출에만 목적지 미표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료 호출 때 목적지를 표시하지 않으면 택시기사가 아예 호출 앱을 꺼놓고 다니며 승객을 가려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지금도 유료 호출의 경우 일부 플랫폼 중개 사업자들은 목적지 미표시를 적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제2의 타다 금지법이라며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플랫폼 업계를 규제하는 것이 시장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벤처단체연합회는 “목적지 미표시는 이미 여러 기업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 검증됐다”며 “택시기사는 목적지가 미표시된 호출을 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고 지적했다.

택시 기사들 의견도 갈린다. 국토교통부는 목적지 전면 미표시와 관련해 택시기사 776명에 대해 의견 조회한 결과 찬성은 39.6%, 반대는 48.7%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택시기사 입장에서는 목적지가 사업 구역 밖이거나 교대 시간에 차고지와 먼 곳으로 배차되면 승객을 받는 게 오히려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최근 법안 논의 과정에서 승객에 대한 의견 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정부가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발표할 때도 승객들의 의견 수렴 절차는 없었다.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은 “소비자가 제일 중요한 주체”라며 업계를 대변하는 법안이 만들어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맹성규 민주당 의원도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감안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소비자가) 전혀 배제된 상태에서 국토부가 어떤 기준으로 그런 자의적 판단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반 승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실시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3일 “객관적이고 기술적으로 설문조사를 만들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목적지 미표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문조사를 하기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