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신축 A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들은 단지와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 중문을 놔두고 큰 길가에 있는 정문으로 등하교를 한다. A아파트에서 H초등학교 중문으로 이어지는 통학로가 조성될 예정이었지만, 인근 대단지인 B아파트 측에서 이를 막아서고 나섰기 때문이다.
애초 H초등학교에는 중문이 없었는데, B아파트 주민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B아파트 입주민의 초등학생 자녀들은 단지 내에서 곧바로 이 문을 통해 등하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쯤 A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2일 찾아간 문제의 통행로에는 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다. 울타리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는 상태였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바리케이드와 철조망까지 설치돼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치워진 상태였다. 대신 출입문 너머 H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공간에는 B아파트에서 텃밭을 조성하고 있었다. 텃밭을 만들어 출입을 막겠다는 의도인 듯했다. A아파트 한 입주민은 “전북 전주에선 자기 건물을 뚫어 통학로를 낸 건물주도 있다는데…이게 뭐하는 건지”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갈등은 기존 B아파트 옆에 A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A아파트 입주민 자녀 일부가 H초등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A아파트 주민들은 중문으로 연결되는 통행로를 통해 자녀들이 학교를 오갈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B아파트 측에서 해당 통행로는 ‘우리 아파트 사유지’라며 출입을 막기 시작했다. ‘무단침입 시 고소한다’는 경고장이 붙더니, 심지어 간이 초소까지 등장했다.
A아파트 측은 해당 통행로가 서울시 고시에 따라 공공보행통로 설치가 예정된 곳이라며 장애물 제거를 요구했다. 마포구청 측도 이들 손을 들어주며 장애물을 치울 것을 공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B아파트 입주민회 측은 버텼다. 결국 통행로가 공공보행통로 예정지라는 건 마포구청 측 착오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 문제로 자녀와 함께 등·하교하는 입주민이 적지 않았다. 자녀 하굣길을 함께 하던 한 학부모는 “스쿨존 사고도 많고, 아이가 걱정돼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 역시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 자녀 통학이 가장 큰 문제”라며 “차로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학부모는 방호 울타리가 없는 곳에 주차하는데 아침이면 이 주변이 주차된 차로 꽉 막힌다. 학교에서 위험하니 자제하라고 안내한 적도 있다”고 했다.
통학로 폐쇄로 B아파트 입주민 자녀들도 중문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B아파트 학생들은 아파트 앞 공원을 통해 곧바로 학교 후문으로 갈 수 있다.
B아파트가 통행로를 막은 이유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온다. 주민들 사이에선 B아파트가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지위를 독차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결국 아파트 값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초등학교까지 횡단보도를 건너는지 여부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B아파트 입주자대표회 측 입장을 묻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듣지 못했다.
개학 두 달이 지났지만, 통행로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 측은 B아파트 측과 면담할 예정이지만,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마포구청 측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통학로 안전 확보 방안 마련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추가로 방호 울타리 설치가 필요한 곳이 있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