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기술유출 5년간 25조… 실형은 10%뿐

입력 2023-05-03 04:06
사진=최현규기자

블록체인 기술 기반 금융회사 보안팀장으로 근무했던 A씨는 회사가 보유 중인 정보보호 관리 기술을 이직하려던 싱가포르 회사에 유출했다. 피해 기업은 기술 개발을 위해 2년간 70억원을 투자했다. 법원은 2021년 “A씨가 회사 허가를 받은 것처럼 굴며 부하직원을 시켜 기밀 자료를 취득했다”면서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한국 기업 대상 기술유출 시도 역시 증가 추세지만, 법원은 초범이거나 피해금액 특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등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다.

대검찰청은 2일 특허청과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 세미나’를 열고 기술 유출 시도 범행 처벌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2022년 적발된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은 총 93건으로 피해액은 약 25조원으로 추산된다. 적발되지 않은 사건을 더하면 기술유출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훨씬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유출 범죄 특성상 범인은 대부분 초범일 수밖에 없다는 게 실무자들 평가다. 한 회사나 한 업종에 오래 근무한 베테랑들이 업무상 취득하게 된 기밀이 주요 범죄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들과 기술유출을 할 수 있는 개인을 중개해주는 브로커 업체도 있어 파악에 나선 상황”이라고 말했다.

피해액 산정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실제로 중국 업체의 취업 제안을 받고 의료기기 설계도면을 빼돌려 넘긴 B씨에게 법원은 2021년 “유출 기술이 중국 업체 특허 출원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기술유출 범죄 피해액을 해당 기술이 유출되지 않았을 경우 원기술 보유자에게 돌아갔을 수익을 기준으로 계산하고 있다. 문제는 개발 중이거나 시제품 단계 기술은 시장 가치를 알 수 없어 피해액 추산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피해액 산정 시 기술개발 비용을 포함하도록 양형기준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검은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 강화 의견서를 냈다. 2019~2022년 선고된 기술유출 사건 중 실형은 10.6%에 불과했고, 2022년 영업비밀 해외유출 범죄의 평균 형량은 14.9개월에 그쳤다. 조용순 한세대 교수는 세미나에서 “기술 해외유출 사범에 대한 권고 형량을 징역 2~5년으로 기존보다 2배 이상 높이고, 초범도 중형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