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송영길 전 대표가 검찰의 ‘조사 불가’ 방침에도 일방 출석했다가 조사실 입장도 못한 채 귀가했다. 송 전 대표는 ‘정치수사’ ‘인생털기 수사’ 등으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면서 “나를 구속하라”고 했지만, 검찰 안팎에선 반대로 구속 수사를 피하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 나왔다. 검찰은 돈봉투 의혹 공여자 조사를 마친 뒤 수사 일정표에 따라 송 전 대표 조사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다.
송 전 대표는 2일 오전 9시59분쯤 굳은 표정으로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들어섰지만 로비 보안검색대도 통과하지 못하고 8~9분 만에 발길을 돌렸다. 송 전 대표는 1층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검사님을 면담할 수 있을까요?” “부장검사와 통화 연결 좀 해주세요”라고 요청했으나 “사전 (출입) 등록이 돼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조사 자체를 거부당한 송 전 대표는 청사 앞에서 미리 준비한 A4용지 6장 분량의 입장문을 꺼내 “전당대회 금품수수 논란에 대해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검찰이)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송영길을 구속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송영길 구속하라” “김건희를 특검하라” 등 여야 지지자들 간 거친 설전이 오갔다.
송 전 대표는 ‘정치적 기획수사’라는 단어를 6차례나 사용하며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그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민심이 계속 나빠지자 일부 언론과 야합해 송영길을 표적 삼아 정치적 기획수사에 올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수사를 ‘별건수사’ ‘전근대적 수사’ ‘인격살인’ 등으로 칭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그간 검찰 수사를 받은 야권 인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송 전 대표는 “전당대회란 것이 100만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저는 후보로서 30분 단위로 전국을 뛰어다녀 제가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며 돈봉투 의혹과는 거듭 거리를 두려 했다.
강래구 한국감사협회장과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등의 전화 녹음파일과 관련해선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신빙성은 검찰과 법원에서 다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송 전 대표는 외곽 후원조직인 ‘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의 기부금이 경선캠프로 흘러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저는 한 푼도 먹사연의 돈을 쓴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검찰은 송 전 대표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까지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내용이 없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수사 절차에 대해서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또 “송 전 대표가 자꾸 ‘별건수사’라고 말하는데, 수사 단서가 확인됐는데 수사를 안 하면 오히려 직무유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송 전 대표가 자진출석을 강행한 데는 여론전을 펼치는 동시에 ‘도주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켜 향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비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비서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법원은 “도주 염려가 없다”며 검찰의 두 차례 영장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수사 대상이 됐던 박지원 당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도 스스로 출석해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았다.
박재현 신지호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