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종교편향·위작·인사잡음’ 칼 빼든 대구시, 문화도시 명예회복 나섰다

입력 2023-05-03 21:43
위작으로 드러난 대구미술관 소장 김진만의 ‘매화’ 그림. 대구시 제공

최근 종교편향, 위작, 인사잡음 등으로 대구의 문화·예술기관이 잇따라 구설수에 오르며 문화·예술도시 대구 명성에 흠집이 났다. 대구시는 특정감사, 문제 조직 폐지 등 강수를 두며 명예회복에 나섰다.

시는 우선 종교편향 논란에 불을 지핀 베토벤 제9번 교향곡 ‘합창’ 공연 취소 사태와 관련해 ‘종교화합자문위원회’를 폐지하기로 했다.

문제의 발단은 수성아트피아 재개관 기념 대구시립교향악단·합창단 공연이 돌연 취소되면서다. 레퍼토리 중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 원인이었다. 대구시립예술단(교향악단·합창단·소년소녀합창단·극단·국악단·무용단)은 공연 전 조례 규정에 따라 종교화합자문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종교계 자문위원 4명 중 1명이 이 곡에 대해 ‘(기독교)신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겼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공연 한 달 전 급하게 내려진 결정에 곡을 변경하기 어려워 공연을 취소하게 됐다. 이 결정에 “전 세계에서 공연되는 명곡에 말도 안 되는 해석”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연주 모습. 대구시 제공

종교화합자문위원회는 2021년 대구시립예술단 예술감독·단원들의 종교중립 의무를 강화하고 예술계-종교계 화합·발전방안 모색을 위해 관련 조례를 개정해 설치한 기구다. 15인 이내로 위원회를 구성하면 된다. 현재 6명(4명 종교계)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과반수로 사안을 의결한다. 종교 중립성과 관련된 안건에 대해서는 출석한 종교계 자문위원 전원 찬성이 필요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은 만장일치 방식이다. 종교계 위원들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공연 내용을 변경할 수밖에 없어 예술표현에 대한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례 개정 이후 계속 제기돼왔다.

시는 종교화합자문위원회를 폐지하고 시립예술단의 종교중립 의무를 보다 강화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종교편향 방지대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조례에 포함된 종교화합자문위원회 조항은 입법예고(5월10~20일), 시의회 조례안 심사 등을 거친 뒤 7월쯤 삭제할 예정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문 성격의 종교화합자문위원회가 취지와 다르게 사전검열적 성격으로 운영됐고, 문화·예술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활동으로 변질됐다”며 “실효성 있는 시립예술단 종교편향 방지대책을 마련하고 지역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예술계·종교계 간 소통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구미술관 전경. 대구시 제공

대구미술관도 논란의 중심이 됐다. 전임 관장 사직으로 공석이 된 대구미술관장 자리에 다른 근무기관의 징계 이력을 가진 인물을 내정해 논란이 일었다.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신임 관장 내정을 취소하고 재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위작 보유 논란도 벌어졌다. 대구미술관 소장 작품 중 진품감정서가 없는 작품 등 10여점을 조사한 결과 4개 작품이 위작 판정을 받았다. 4개 작품 중 김진만 선생의 ‘매화’는 1·2차 모두 위작 판정을 받았다. 시는 2차 조사 때만 위작 판정을 받은 나머지 3개 작품은 추가 검증을 한 후 위작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4개 작품을 구입하는데 3000여만원의 예산이 들었다.

대구시 감사위원회는 연이어 논란을 일으킨 대구미술관에 특정감사를 하고 있다. 시는 위작으로 판명된 작품 구입경위, 작품수집심의위 운영 적정성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대구미술관 소장품(1899점) 중 기증 작품(1300여점)도 위작 감별을 실시하고 기증 절차를 개선할 계획이다. 관장 인사와 관련해서도 징계 전력 인사를 미술관장으로 내정한 경위를 비롯해 채용 관련 사항, 회계·계약 분야 등 대구미술관 운영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

김태우 대구시의원
“미술품 진위 특정감사, 미술관 신뢰 회복 계기로”

대구미술관 소장작품 일부가 위작일 수 있다는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태우(사진) 대구시의원은 3일 국민일보에 “지역 미술계의 투명성 회복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말 위작 가능성에 대한 제보를 받은 뒤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2월 대구시의회 대구문화예술진흥원(대구미술관, 대구오페라하우스 등 지역 문화·예술기관들을 통합해 만든 기관) 업무보고 때 대구미술관 소장품 중 위작이나 가품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소장품의 진품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의 발언이 알려지며 대구미술관 소장품 위작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소장품 감정과 위작 확인, 대구시의 대구미술관 특정감사 조치까지 이뤄졌다.

김 의원은 이번에 위작이 확인돼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늦은 감이 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미술계 전문가가 2021년 대구미술관 소장품 중 일부가 위작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대구미술관 측에서는 예산 문제 등을 내세우며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미술계뿐만 아니라 지역 예체능계가 워낙 좁고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가 있을 수 있지만 문제를 드러내 고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또 “위작들이 그동안 대구미술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것으로 아는데 이는 대구미술관의 신뢰성과 명성을 깍아내린 것”이라며 “미술 쪽은 전문 분야가 다양해 검증이 쉽지 않겠지만 대구시 특정감사에서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 대구미술관이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