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야, 주례사 어떻게…” 독수리 타법으로 열공하는 6070

입력 2023-05-02 04:09

“선생님, 천천히요. 로그인만 했는데 벌써 머리에 쥐가 나네요.” 지난 27일 오전 서울 강동구 해공도서관 3층 커뮤니티실. 이날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를 배우겠다며 모인 수강생의 평균 연령은 66세다. 머리가 허옇게 센 수강생들이 양손 검지로 노트북 키보드를 하나하나 눌러 가며 수업을 쫓아가고 있었다(사진).

챗GPT 바람이 6070세대에도 불고 있다. 서울시 디지털배움터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챗GPT 강의를 개설하자마자 순식간에 정원 6명이 꽉 찼다. 아침 일찍 강의실에 모인 이들은 ‘챗GPT 열풍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고 입을 모았다. 맨 앞자리에 앉은 김미자(72)씨는 “젊은 사람들이 챗GPT 얘기를 많이 한다. 요새는 이거 모르면 안 된다고 하는데 대체 뭔지 답답했다”며 강의 신청 이유를 전했다.

수강생들은 챗GPT 로그인에만 15분이 걸렸다. 지난 수업 때 이미 한 번씩 익힌 내용이지만 검색창 앞에서 한참을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선생님이랑 똑같이 했는데 이상한 게 나왔다” “늙어서 그런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눈이 침침해 글씨가 안 보인다”며 챗GPT와 씨름하는 수강생들의 토로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만만찮은 수업이었지만 그래도 ‘재밌다’는 반응이 많았다. 최승우(66)씨는 “챗GPT에 빠지면 친구들도 필요 없을 것 같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챗GPT에) 우리 아이가 술을 너무 좋아하는데 걱정된다고 물었더니 ‘저는 가족도 없고 아들도 없습니다’고 답했다. 챗GPT가 사전 역할부터 친구 역할까지 해줘 유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30세대 못지않은 챗GPT 활용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성아경(59)씨는 챗GPT로 동화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강동구민 기자로 활동했던 홍순영(65)씨는 “기사를 쓰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챗GPT의 도움을 받아 글의 뼈대를 작성한 다음에 내 생각을 넣을 수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들의 열정 뒤론 새로운 흐름에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드리워 있다. 2년 전까지 교사로 일하다 정년퇴임한 김명옥(65)씨는 “기차를 타면 온라인으로 표를 끊지 못한 노인들은 전부 서서 가고, 젊은이들은 시간 맞춰 와서 앉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내가 그렇게 되는 게 시간문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성씨도 “새로운 흐름에 뒤처지면 문맹이랑 똑같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키오스크 사용법조차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 노년층을 위해 챗GPT와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는 강의가 속속 열리고 있다. 디지털배움터 서울시사업단 관계자는 “지난해 메타버스에 이어 올해는 챗GPT가 여러 분야에 활용되면서 디지털 약자를 대상으로 새롭게 무료 강의를 신설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진행한 중장년층 대상 무료 특강은 강원도에서 오겠다는 수강생도 있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챗GPT가 젊은층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정원 메타버스인재원장은 “과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아직 챗GPT도 젊은 세대만 쓴다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중장년층도 주례사나 건배사처럼 소소한 것들부터 업무 효율 향상까지 챗GPT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