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가 지난 28일 ‘피터팬 & 웬디’를 공개했다. 이달 말에는 실사 영화 ‘인어공주’가 극장에서 개봉된다. 애니메이션 명가 디즈니의 실사판은 항상 이목을 끄는데 이들 작품은 또다른 이유로 화제였다. 팅커벨과 인어공주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어릴 적 본 원작 내용을 왜 훼손하냐”는 거다. 유튜브 인어공주 예고편에선 ‘좋아요’(30만)만 나오고 ‘싫어요’는 가려졌다. 300만이 넘는 등 압도적으로 싫어요 숫자가 많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디즈니가 이렇게 시도한 건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에 기인한다. 성·인종·종교 등을 이유로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해선 안된다는 운동이다. 이런 대의야 누구나 공감하지만 일부 근본주의적 접근법이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넷플릭스는 오는 10일 ‘퀸 클레오파트라’를 선보이는데 클레오파트라 역에 흑인을 캐스팅해 이집트 정부가 역사 왜곡이라고 항의했다. 디즈니 작품이야 창작물이라 해석의 여지가 있다 해도 역사 인물까지 PC에 따라 변형시킨 건 도를 넘었다는 반응이 많다. ‘흑인 춘향’ ‘라티노 이순신’을 받아들일 한국인이 몇이나 되겠나. 최근에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저자 로알드 달,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도 PC 시각에 맞춰 문장 일부를 고치는 출판사들도 있다. 과거 명작을 현 잣대로 검열하고 수정하는 게 ‘올바름’일까.
PC 피로증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2018년 미국 예일대 조사에 따르면 3000명 가운데 80%가 PC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미 대선, 지난해 한국 대선 결과가 인종, 페미니즘, 약자 보호 같은 PC 의제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좌파인 영국 작가 스티븐 프라이는 PC를 반대하는 이유로 ‘설교조 개입’ ‘독선’ ‘경건한 체하기’ 등을 꼽았다. 겸손, 배려 등 대의를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의나 평등을 외치는 이들이 왜 ‘PC충’으로 불리는지 고민해볼 때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