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비리 사태를 막기 위해 도입된 원전감독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전감독법 시행 2년 만에 두 원전 공공기관 직원이 연루된 입찰 비리가 발생했지만 전문가로 구성된 원전감독법 평가단은 ‘공정한 입찰 경쟁 기반을 조성했다’며 해당 기관에 긍정 평가를 내렸다. 실효성 있는 원전 기관 실태 점검을 위해 평가 지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5년 7월부터 원전감독법을 시행 중이다. 2013년 시험성적서 위조를 통한 대규모 원전 납품비리 사태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전연료, 한전(원전수출 분야) 등 5개 원전 공공기관은 2년마다 원전 비리를 막기 위한 자체 운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매년 계획 이행 여부를 담은 보고서도 산업부에 제출해야 한다.
산업부는 전문가 20여명을 평가단으로 위촉하고 2018년과 2020년, 지난해 세 차례 원전 공공기관이 제출한 보고서를 평가했다. 5개 원전 공공기관이 공정한 구매계약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지, 수의계약 비율을 적정 수준에 맞췄는지 등이 평가 기준이다.
문제는 원전감독법 도입 이후에도 원전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력기술 직원 A씨는 2017년 11월 신고리 5·6호기 폐수처리설비 입찰을 앞두고 경쟁업체가 낸 사업제안서를 평소 알고 지내던 B씨 등 2명에게 제공했다. A씨는 한수원 직원 C씨로부터 관련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A씨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경쟁업체보다 제안가격을 낮춰 한수원으로부터 120억원 규모의 공사를 낙찰받았다. A씨는 퇴직 후 B씨의 업체에 고문으로 재취업했다. 법원은 2021년 A씨에 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명백한 원전 비리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평가단은 사건 이듬해인 2018년과 1심 판결 직후인 2022년 ‘구매 계약’ 부문에서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에 긍정 평가를 내렸다. 각 기관이 계획대로 협력업체 정기평가 등을 실시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평가단이 기존에 정해진 항목 위주로 정량 평가에만 치중하면서 120억원 규모의 원전 비리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업부는 이 사건이 개인적 비위라서 입찰이나 계약 시스템 정비를 다루는 원전감독법의 대상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나왔는데, 3차 평가 이후 시점이라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6년이 지났는데도 관련 기관들이 세 차례나 원전 운영 긍정 평가를 받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원전 비리를 차단할 수 있는 평가 지표를 새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