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의 딸로 중국에서 출생한 20대 여성 A씨는 2020년 12월 서울가정법원에 북한으로 송환된 친모 B씨와의 친생자 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또 다른 탈북민인 계모 C씨의 학대에 시달리다 법원으로부터 친생자 관계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은 후 ‘무국적자’가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B씨는 1998년 탈북해 중국에서 숨어 지내던 중 중국동포 남성과 결혼해 A씨를 낳았다. 그런데 B씨는 몇 년 뒤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 부친은 이후 C씨와 재혼을 했고, A씨를 C씨의 친자녀로 신고했다. C씨와 함께 한국에 입국한 A씨는 탈북민의 자녀로서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A씨는 어린 시절 내내 계모의 학대에 시달렸다고 주장하며, C씨를 상대로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C씨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법원으로부터 확인받은 것이다.
문제는 이 판결로 A씨가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주민등록 말소로 추방될 위기에 처한 그는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북한에 있는 B씨를 상대로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사단법인 통일법정책연구회, 재단법인 동천 등이 함께 소송대리인단을 구성해 무료로 소송을 지원했다.
1심은 A씨의 소를 각하했다. 관계자의 증언 외에 B씨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 사실상 특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심은 최근 1심 판결을 뒤집고 A씨가 B씨 친딸이 맞는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관계자들이 경험하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해 일관된 진술을 하는 점, 국가정보원 사실조회 회신 결과 등에 비춰 진술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모계혈족이 아니어도 친족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A씨와 B씨 고종사촌의 친족 관계를 확인한 점도 근거로 삼았다.
변협은 27일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자 자녀가 한국에 살면서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상대로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을 구한 첫 판결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