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원재료 가격 변동이 심상찮다. 백설탕과 설탕의 원료인 원당의 선물 가격이 이달 들어 급등하는 추세다. 최근 10년 동안 이렇게 폭등한 적이 없었다. 밀 선물 가격은 최고점에서 내려왔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도 계속되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는 당장 영향이 없다면서도 장기화했을 때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27일 영국 런던 국제금융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현지시간) 기준 백설탕 선물 가격은 t당 694.9달러로 마감했다. 지난달 22일 600달러 선을 넘어섰고, 지난 12일에는 t당 700달러를 돌파했다. 런던 국제금융선물거래소의 설탕 선물 가격이 t당 7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1년 11월 이후 12년 만이다.
설탕의 원료인 원당 선물 가격도 비슷한 추세다. 미국 뉴욕 국제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기준 파운드당 26.46센트에 거래됐다. 이달 들어 상승곡선을 그으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원당과 설탕 선물 가격 급등이 당장 식품기업의 비용 부담과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선물 거래인 만큼 통상 4~6개월 뒤 가격에 반영된다. 설탕의 경우 1년까지 기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구매 가격이 소비자가격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시차가 발생한다.
다만 이런 추세가 장기화하면 국내 식품기업도 영향권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원당이나 설탕 구매 시점에 선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면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원당을 수입하는 제당업계와 원재료비에 설탕 비중이 10%가량 차지하는 제과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설탕 가격의 비정상적인 급등은 이상기후와 전쟁, 엔데믹으로 설명된다. 이상 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과 제조 여건 악화가 설탕 가격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른 것도 악재다. 사탕수수를 설탕 대신 에탄올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설탕 생산량 자체가 줄었다.
공급이 급감했는데 수요는 급증 추세다. 엔데믹을 맞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외식 수요가 증가했다. 설탕을 소비하는 이들은 늘었는데 공급은 제한돼 있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원당·설탕 가격 급등에는 수요 공급의 불균형 또한 주요하게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설탕만 문제가 아니다. 다소 안정세를 찾은 듯 보이지만 밀 가격은 여전히 불안한 형국이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6일(현지시간) 기준 t당 밀 선물 가격이 230.47달러로 마감됐다. 전쟁 영향을 직격탄으로 받던 1년 전보다는 안정적인 추세다.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전쟁 전보다 여전히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밀 수확량 부진 전망도 불안감을 더한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 밀 가격이 다시 오를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미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올해 우크라이나의 밀 생산량은 1600만~1700만t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침공 이전인 2021년(3300만t)의 절반 수준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당장 국제 선물 가격에 기업이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면서도 “불확실한 상황인 건 맞다. 구매처를 다변화하고 구매 시점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애를 쓰고 있지만 고환율까지 더해져서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